가을, 셔터를 누르기 전의 설렘

깊어가는 가을에 만난 풍경


창밖은 아직 어둡다.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길을 비추고 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가을 출사는 유난히 설렌다. 봄처럼 화려하지 않고 여름처럼 짙지도 않지만, 가을에는 가을만의 깊은 색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가는 나뭇잎과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풀잎까지.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풍경도 카메라를 들고 바라보면 달라진다.


출사지에 도착하니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옷깃을 여미고 카메라를 꺼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인데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조금씩 밝아지는 하늘을 말없이 찍고 있었다.

나도 숨을 고르며 셔터에 손가락을 올렸다.

찰칵.

붉은 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산과 들이 빛을 받으며 천천히 깨어났다. 아침 햇살이 억새 끝에 닿자 은빛 물결이 일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는 한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다시 일어섰다.


나는 셔터를 몇 번 누르다가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눈으로 보고 싶었다.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차가운 바람, 억새가 스치는 소리, 산 위로 올라오는 햇살. 가을 아침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졌다.


사진을 시작한 뒤 자연을 대하는 마음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단풍을 보면 ‘예쁘다’ 하고 지나쳤다. 이제는 빛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오는지 살펴보고, 나뭇잎 하나에도 시선을 오래 머문다. 같은 장소라도 아침과 저녁의 색이 다르고, 맑은 날과 흐린 날의 표정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연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떤 날은 짙은 안개로 풍경을 감추고, 어떤 날은 눈이 부실 만큼 맑은 햇살을 내어준다. 기대했던 일출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조차 헛걸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고 자연 앞에 서면 나는 조금 겸손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다. 구름을 움직일 수도 없고, 바람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해에게 조금 더 천천히 떠오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좋은 장면을 만나려면 자연이 내어주는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인지 사진이 나를 가르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카메라는 내게 단순히 풍경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집 안에 머물던 나를 새벽길로 불러냈고, 낯선 곳으로 데려갔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을 바라보게 했고, 기다림과 실패까지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설레는 법을 알려주었다.

가을은 짧다. 붉게 물든 단풍도,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귀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계절은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 짧은 순간 하나를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새벽길을 달리고,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고, 때로는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다음 출사 날짜가 정해지면 또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번에는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카메라와 함께한 시간 동안 나는 사진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기다리며 가슴 설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은 깊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도 카메라와 함께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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