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안네의 일기』와 『블룸즈버리 일기』

by박민영

강의 시간, 학생들에게 일기를 쓰냐고 물어보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젓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일기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꼭 그렇지도 않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예쁜 스티커나 사진으로 다이어리를 꾸미고 짧은 메모를 남긴다.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거나, 휴대전화 메모장에 하루의 감정을 적어 두기도 한다. 형식만 달라졌을 뿐,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기록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왜 일기를 쓰지 않느냐고 물으면 대개 비슷한 대답을 한다.


“매일이 똑같아서요.”

“특별한 일이 없어서요.”

“그럴 시간이 없어서요.”


듣고 보면 맞는 말이다. 어른이 된 뒤의 일상은 생각보다 단조롭고 바쁘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온다. 다음 날도 비슷하다. 지난주와 이번 주가 크게 다르지 않고, 이번 달과 지난달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같은 계절이 돌아오는 것 같지만 지난해의 여름과 올해의 여름은 다르다. 같은 캠퍼스를 걷고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어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다. 우리는 늘 비슷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단 한 번뿐인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특별한 사건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하루를 붙잡아 두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도 기록하면 특별해지고, 특별한 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다. 어쩌면 이것이 일기의 가장 중요한 의미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휴대전화가 알아서 몇 년 전 사진을 보여 준다. 문득 화면에 뜬 사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벌써 3년 전이라고? 그때는 별생각 없이 찍었던 사진인데, 다시 보니 그날의 공기와 풍경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때 함께 있었던 사람, 그날의 감정, 그 시절의 고민까지도 따라 나왔다.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진다. 기록은 기억을 붙잡아 둔다. 그래서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다.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기록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문학 치료에서 일기는 매우 중요한 글쓰기 방식이다. 일기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다. 잘 쓰기 위해 쓰는 글도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사람은 하루를 두 번 살아간다. 한 번은 실제로 살아가고, 또 한 번은 기록을 통해 다시 살아간다. 그렇게 기록된 하루는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안네의 일기


일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안네 프랑크(1929-1945)이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그림바카라이나 청소년용 축약본을 통해 『안네의 일기』를 읽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이 작품을 만났다. 좋은 작품은 독자와 함께 나이를 먹는다. 나에게 『안네의 일기』는 그런 작품이다. 초등학생 때 읽었을 때와 대학생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가 달랐고, 문학 연구자가 된 뒤에 읽었을 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작품은 그대로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을 읽는 나는 변해 갔다.


안네 프랑크.jpg학교 바카라상에 앉아있는 12살의 안네 프랑크(1929-194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941년. 이미지 출처: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얼마 전 안네 프랑크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인물인데도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총명하고 야무져 보이는 눈빛, 그리고 어딘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기 생각도 분명한 성격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 온다. 아마 사진 속 소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42년 6월 12일, 열세 번째 생일에 안네는 아버지에게 일기장을 선물 받는다. 그리고 그 일기장에 '키티(Kitty)'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안네에게 일기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였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래서 안네는 일기를 쓸 때마다 "친애하는 키티에게"라고 말을 건넨다.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비슷하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이어리에 적어 두기도 하고, 메모장에 남기기도 한다. 일기는 결국 자기 자신과 나누는 가장 오래된 대화 방식이다.


안네는 키티에게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날의 기분, 작은 고민과 바람들. 누군가가 읽는다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사소함이 『안네의 일기』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안네는 세계사를 기록하려고 일기를 쓴 것이 아니었다.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하루를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기록들은 오늘날 가장 생생한 역사의 증언이 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종종 코로나 시절을 떠올려 보라고 말한다. 몇 년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학교에 가지 못했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으며, 마스크 없이 거리를 걷는 일조차 어려웠다. 당시에는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니 그것 또한 우리 시대의 한 기록이 되었다. 물론 안네의 삶을 코로나와 비교할 수는 없다. 안네는 전쟁과 박해 때문에 숨어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햇빛 한 줄기, 창밖의 풍경, 친구와 나누는 대화, 학교에 가는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소중한 것이 된 것이다.


안네는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그는 일기장 첫머리에서 “당신에게만은 내 마음속 비밀들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나를 격려해 주세요”(1942년 6월 12일)이라고 썼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28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추가로 쓴다.


지금까지 당신은 내 용기를 북돋아 줬어요.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게 나에겐 큰 위로가 된답니다. 그냥 일기를 쓰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쓰는 게 훨씬 재미있고, 덕분에 요즘에는 일기 쓰는 시간이 너무너무 기다려져요.

당신과 함께 여기 오게 돼서 정말 기뻐요!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문학사상사, 2024


1942년 9월 28일이라면 안네가 은신처에 들어간 것이 7월 9일이니 세상과 단절된 지 2달 반 정도 지난 시점이다. 그러니까 ‘여기’란 안네의 가족과 지인들이 숨어 살던 공장 별관의 거처이다. 그곳에서의 일기 쓰기가 얼마나 닫힌 삶의 버팀목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안네의 일기』는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다. 한 소녀가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사랑하려고 했던 기록이며, 동시에 일기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아름다운 사례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과 숨어 살며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적었을 뿐인데 그 기록은 역사가 되었다. 평범한 일도 기록하면 특별해지고, 특별한 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그 단순한 진실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하는 작품이다.


블룸즈버리 일기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한 소녀의 평범한 기록이 어떻게 역사의 증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일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몇 년 전, 방문학자로서 영국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블룸즈버리 일기』라는 바카라을 출간한 적이 있다. 바카라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일기 형식의 글은 사적인 시각을 통해 전체의 일부를 개성적으로 해석한다. 공적인 시각이 간과하는 소소한 개인적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획일성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것은 주관적이며 개인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요되지 않은 진실의 한 면을 내포한다.

-박민영, 「바카라머리에」 부분, 『블룸즈버리 일기』, 성신여대 출판부, 2019, 7면


시간은 좀 흘렀지만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 일기는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다.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일기는 한 사람이 바라본 세상이고, 한 사람이 살아 낸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블룸즈버리는 런던 중심부에 있는 역사 깊은 지역이다. 대영박물관이 있고,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블룸즈버리 그룹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곳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적지 않게 설레었다. 오래전 바카라에서 읽었던 공간을 직접 걸어 다니고, 익숙한 작가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서 살아 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문학 연구자였다. 그러나 영국에 도착한 순간 그런 정체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외국인이었고,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읽고 쓰는 일은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말하고 듣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상대방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했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답답해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하던 일들이 그곳에서는 쉽지 않았다. 길을 묻는 일도, 행정 서류를 처리하는 일도,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지역 교육기관에서 영어 수업을 듣게 되었다. 교실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여성들이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중동에서 왔고, 어떤 사람은 동유럽에서 왔으며, 또 어떤 사람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왔다. 모두 각자의 이유로 영국에 와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낯선 슬롯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나는 조금 색다른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서로의 차이였다. 나는 읽고 쓰는 일은 비교적 수월했지만 말하기와 듣기가 어려웠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생활 속 대화는 능숙했지만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배움은 빨랐지만 하는 일이 바빠 늘 결석하던 이도 있었고, 지각 한 번 안 했지만 5년째 같은 과정을 반복해서 배우는 중년 여성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그 부족함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뉴스에서나 접하던 이민자 문제나 다문화 슬롯의 이야기가 더 이상 추상적인 슬롯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이었고, 매일의 감정이었으며, 아주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느끼는 두려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당혹감, 그리고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주는 위로를 몸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나는 꾸준히 일기를 썼다. 특별한 사건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 도서관에서 읽은 바카라, 영어 교육원에서 만난 이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풍경, 그리고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 같은 것들을 적어 두었다. 당시에는 그저 하루를 정리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 보니 그 기록들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 속에는 영국 런던이라는 공간보다도 그곳에서 살아가던 나 자신이 담겨 있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무엇에 감동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그리워했는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기억은 흐려졌지만 기록은 남아 있었다.


돌아보면 일기는 세상을 기록하는 글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기록하는 글이다. 같은 장소에 서 있어도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고, 같은 경험을 해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다. 일기는 바로 그 차이를 보여 준다. 그래서 일기는 언제나 개인적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개인성 때문에 더 진실하다.


안네 프랑크가 자신의 은신처에서 하루를 기록했듯이, 나 역시 블룸즈버리에서의 하루를 기록했다. 시간도 장소도 전혀 다르지만 기록의 본질은 같다.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는 것.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소를 지나간다. 어떤 곳은 오래 기억되고, 어떤 곳은 금세 잊힌다. 그러나 기록된 장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곳의 풍경뿐 아니라 그곳에 머물렀던 나 자신까지 함께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기는 기억의 저장소이면서 동시에 자기 발견의 공간이다.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일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만남은 종종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블룸즈버리에서 쓴 일기는 평범한 일도 기록하면 특별해지고, 특별한 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나를 위로하는 ‘짧은’ 글쓰기


그렇다면 일기에는 무엇을 써야 할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감정을 경험한다. 기뻤다가도 속상해지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도 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 하나에 마음이 움직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다. 문제는 그런 순간들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는 데 있다.


문학 치료 작가 셰퍼드 코미나스는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에서 세 가지 질문을 제안한다.


오늘 가장 나를 놀라게 한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나를 가장 감동시킨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셔퍼드 코미나스,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홍익출판사, 2018, 35-36면


나는 이 질문들이 일기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사건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움직인 순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놀라움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놀랄 수도 있고,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의 안부 문자에 놀랄 수도 있다. 생각보다 예쁘게 핀 꽃 한 송이, 우연히 올려다본 저녁 하늘도 충분히 놀라움의 대상이 된다. 감동 역시 거창한 사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버스에서 본 작은 배려, 지친 날 건네받은 따뜻한 말 한마디, 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온한 하루 자체가 우리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친구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 걸었던 저녁 산바카라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창밖으로 스며들던 햇살이나 늦은 밤 마셨던 차 한 잔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결국 기억하고 싶은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이고, 그 감정은 곧 우리 삶의 모습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늘 200자 정도라도 써 보라고 말한다. 원고지 한 장 분량이면 충분하다. 하루 가운데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 하나만 적어도 좋다. 처음에는 몇 줄밖에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글은 글을 부른다. 한 문장이 또 다른 문장을 불러내고, 하나의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을 끌어낸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면 잊고 있었던 생각들이 떠오르고,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마중물에 비유하곤 한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기록 하나가 더 깊은 기억을 불러내고, 잊고 있던 감정을 끌어올린다. 처음에는 200자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A4 용지 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을 다 쓴 뒤에는 잠시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 보자. 오늘도 잘 살아냈다고, 오늘도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오늘도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의 칭찬을 기다릴 때가 많지만 정작 자신을 격려하는 데는 인색하다. 일기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따뜻한 편지이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남기는 작은 인사이기도 하다.


안네 프랑크는 키티에게 말을 걸며 자신의 하루를 기록했다. 나 역시 블룸즈버리의 낯선 골목을 걸으며 하루를 적어 두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일기의 형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기록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남고, 남겨진 기록은 어느 날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일기를 권한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루 한 줄의 기록이라도 좋다. 원고지 한 장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쓰는 것이다. 기록하는 순간 평범한 하루는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나만의 삶이 될 것이다.


평범한 일도 기록하면 특별해지고, 특별한 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다. 일기는 그 단순한 진실을 가장 오래도록 가르쳐 주는 글쓰기이다.

월, 목 연재
이전 18화트라우마의 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