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꼭지를 먼저 자르면 냄새가 더 심해. 손도 아리니까 다 까고 잘라라”
김장철 마늘을 까던 내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과학보다 강한 주부 9단의 경험치는 이미 알고 계셨다. 마늘 한 쪽을 쪼개는 일은 어쩌면 닫혀 있던 세계를 여는 일이다. 깐마늘이 소쿠리에 수북이 쌓일 때쯤 나는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알싸한 향이 코끝을 찌르고 아린 통증을 느끼고서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오만이었음을 알았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생존의 진실을 미처 몰랐다. 평범함의 틈바구니에서 터져 나오는 낯선 질문 앞에,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사실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매일 양념으로 만나는 마늘이 그러했다.
‘마늘 냄새는 독하다’라는 이 불변의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는 익숙함이다. 그런데 속을 건들지 않으면 마늘은 조용하다. ‘알린’이라는 성분과 ‘알리나아제’라는 효소를 서로 다른 방에 나누어 둔 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외부 자극으로 조직이 깨지는 순간, 둘이 만나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뀐다.
그 맵고 아린 향, 명성이 익히 알려진 ‘알리신’이 된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게 아니었다. 감추고 있던 힘을 드러낸 것이며 상처라는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렇게 탄생한 알리신이 인간에게는 큰 혜택으로 다가왔다. 몸속에 들어오면 강력한 면역 활동을 한다.
마늘을 먹으면 향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입냄새로 여긴다. 그래서 급히 양치하고, 껌을 씹어 덮으려 한다. 그러나 그 향은 입이 아니라 몸에서 올라온다. 알리신이 분해되며 생긴 황화합물이 혈액을 타고 순환하다가 폐를 통해 배출한다. 숨을 쉬는 한, 그 향은 다시 올라온다. 땀샘으로도 스며 나온다.
우리도 무언가를 감추려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말투를 바꾸고 이미지를 꾸며도,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는 덮으려고 할수록, 결국은 배어 나온다. 내면의 중요성을 마늘은 그 독한 향으로 알려주었다.
비단 향뿐만이 아니다. 그 단단한 속내 역시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다. 마늘은 따뜻한 곳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초여름에 수확한 것을 곧바로 심으면 싹이 나지 않는다. 일정 기간 낮은 온도를 겪어야 비로소 휴면이 깨진다. 이른바 ‘춘화처리’다. 추위는 멈춤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상처가 알리신을 만들 듯 추위는 단단함을 만든다. 가장 단단해지는 순간은 버티는 시간을 거쳐야 만들어진다.
마늘은 위로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울 수 있지만, 씨앗을 맺는 능력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몸을 나누어 번식한다. 우리가 까서 먹는 한쪽 한쪽이 그대로 복제되어 다음 생을 이어간다. 수천 년 전의 마늘과 지금의 마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다. 가능성보다 확실성을, 더 많은 변화보다 이미 완성된 자신을 지켜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 단순한 방식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남았다.
마늘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상처를 통해 드러나는 힘으로 ‘나를 건들면 상처만큼 독해지겠다는 단호함과 내면을 제대로 채우라’라고 외친다. ‘춥게 견뎌야 제 몫을 한다’라며 효능감을 증명하고, ‘나는 나를 믿는다’라는 흔들리지 않는 자기다움을 유지한다. 내가 하찮은 양념이라고만 여겼던 마늘에 담겨 있는 사실들이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알싸한 향을 풍기던 그 마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향으로 배어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한을 견디고 단단해진 마늘이 스스로 복제하며 존재를 증명해 내는 일. 온전히 나다운 삶을 살아내는 그 당연한 법을, 하찮은 양념이라 여겼던 마늘은 이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마늘은 수선화과(科)이다.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마늘종 끝에서 꽃이 핀다. 전 세계 마늘 소비량 통계에서 한국은 1인당 연간 약 6~7kg을 소비하여 독보적인 1위다. 거의 모든 요리의 양념으로 사랑받는다.
동서양에서 악을 쫓는 것으로 알려진 이유는 강력한 항균·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어 면역력을 높이고 부패를 늦춰서 생긴 이미지다. 항암 식품 중 최정상을 차지하며 강장제의 기록도 고대 이집트부터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마늘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 ‘일해백리(一害百利)’이다. 한 가지 해로움(냄새)과 백 가지 이로움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