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죽은 뒤에

파

by서람


"나 오늘 파김치 됐어."


누구나 한 번쯤은 말하거나 들어봤을 이야기다. 퇴근길 지하철이나 만원 버스 안에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 감긴 눈으로 간신히 종착역을 향하는 얼굴들, 피로감에 찌들어 움츠려진 어깨와 스마트폰 화면을 향해 꺾인 고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숨이 죽을 대로 죽어 소금과 양념 속에 축 늘어진 파김치. 그것은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해 버린 현대인의 모습과 사뭇 유사하다. 빳빳한 대파 같았던 사람도 하루라는 도마 위에서 잘리고, 경쟁이라는 소금에 절여지고, 업무에 뒤섞인 끝에 결국 축 늘어진 파김치가 된다.


그런데 왜 많은 채소 중에서 하필 ‘파’에 우리 자신을 투영했을까? 배추나 무도 절여지면 숨이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여기에는 ‘파’가 가진 비밀이 있다.

파는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지독하면서도 매력적인 채소였다. 기독교의 구약성경에는 광야에서 그리움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불교에서도 수행의 금기 채소인 '오신채(五辛菜)'의 한 종류이다. 오죽하면 주방에서 아내가 대파 한 단을 썰기 시작하면, 거실에 앉아 있던 나까지 눈물이 날 만큼 독하게 맵다. 땅 위에서는 하늘 향해 꼿꼿하지만, 칼을 대면 댈수록 사방으로 알싸한 독기를 뿜어낸다.

이렇게 파는 눈물 콧물 다 쏙 빼놓을 만큼 기세가 당당하다. 이런 파가 소금에 절여져 숨이 죽는 변신은, 어쩌면 대단한 사건이다. 그래서 ‘파김치가 되다’라는 극적인 말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파김치’를 부정적인 방전의 상태로 표현한다. 그런데 실제 파가 절여져 숨이 죽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비로소 다른 재료와 섞일 준비를 하는 '숙성'의 시간이다.

거칠게 살아서 제 매운맛을 자랑하는 생파는 파김치가 될 수 없다. 소금에 절여져 스스로 지탱하던 섬유질의 벽을 무너뜨려야 비로소 고춧가루의 칼칼함과 젓갈의 감칠맛이 몸통 속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쭉 찢어 올린 잘 익은 파김치 한 가닥에는 생파가 흉내 낼 수 없는 풍미가 있다. 매운맛은 부드러워지고, 향은 깊어진다. 기다린 시간이 맛을 바꾼 것이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각자의 꼿꼿한 자존심과 개성을 품고 살지만, 삶의 무게에 숨이 팍 죽는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호된 시련을 겪거나 실패를 맛보았을 때이다. 그 순간 누구나 파김치가 되어 버린다.


흔히 세상은 싱싱함만을 찬양하며 눈에 보이는 성과를 높게 평가하지만, 인생의 깊이는 가장 팽팽한 순간이 아니다. 실패든 고통이든 적당히 숨이 죽어 내려놓은 사람만이 삶의 간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파김치가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비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파김치의 진짜 얼굴이다.

잘 익은 파김치는 삼겹살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뜨끈한 국물의 품격을 바꾸어 식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제 숨을 죽여 다른 음식과 어우러지고, 자신은 깊은 풍미를 얻는 것, 이보다 아름다운 상생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거울 속에서 파김치가 된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너무 서글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싱싱한 대파의 시절도 분명 아름답지만, 폭풍 같은 일상을 견뎌내며 숙성해가는 삶도 그 자체로 빛난다.


오늘 밤은 애써 꼿꼿해지려 하지 말고, 잘 익은 파김치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올려 먹으며 스스로 위로해야겠다. 물론 맛있게 먹고 난 뒤 파의 입냄새는 온전히 감내해야 할 현대인의 또 다른 운명이겠지만. 뭐 어떤가, 그런 '인간미'를 풍길 수 있다면 그 정도쯤은 멋지게 품고 살아야 하는 법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깊어진 맛을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날이 밝으면 파는 다시 꼿꼿이 일어설 것이다.


파는 수선화과(科)이다. ‘파’라는 이름의 어원은 속이 비었다는 ‘파였다’와 ‘파란 채소’라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추측한다. 파전, 파김치 등의 재료는 쪽파인데 이는 대파와 양파 계통이 섞인 교잡종에 가깝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파’는 대파를 나타내며 거의 모든 한식 요리에 쓰인다.

‘파’는 아래쪽 수염 부분이 뿌리이고, 그 위쪽 짧고 납작한 부분이 줄기이며 나머지 우리가 먹는 흰 부분과 초록 부분이 모두 잎에 해당한다. 특히 대파 뿌리는 예로부터 감기를 쫓는 귀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표적인 내한성 작물로 겨울 대파는 단맛이 높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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