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냉이

by서람


“어머니! 그렇게 잎을 거의 다 떼 내면 뭘 먹어요?”


“알짜배기는 뿌리에 들어있어서 괜찮아.”


어린 시절, 봄나물 냉이를 다듬던 어머니와 나눈 대화이다. 들판에서 캐온 냉이의 누런 잎을 거의 떼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자잘한 뿌리뿐이다. 먹는 데에만 눈독 들이고 있던 나는 그게 먹을 게 뭐가 있을지가 궁금했었다.

이른 봄에 냉이를 캐는 일은 쉽지 않다. 딱딱한 땅에 붙어 있어 캐기도 힘들지만, 다듬는 일도 손이 많이 간다. 이물질을 떼어내고, 땅바닥에 붙어 있던 묵은 떡잎을 제거한 뒤, 흙에 얽힌 실뿌리를 정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 과정에서 서두르지 않으셨다. 자연이 준 선물을 얻었다는 고마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셨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우리가 먹는 냉이는 뿌리에 영양이 집중되어 있다. 다만 줄기가 자라기 전까지만 그렇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냉이의 생애주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가을에 싹튼 냉이는 땅바닥에 납작 붙어 자란다. 잎은 사방으로 펼치며 서로 겹치지 않게 배열하여 낮은 위치에서도 햇빛을 골고루 받아들인다. 이렇게 만든 양분은 대부분 뿌리에 비축한다. 찬바람을 피하고 땅의 온기를 활용하는 영리한 생존 방식이다.

어머니가 그토록 공들여 다듬은 것은, 단순히 깨끗한 식재료를 얻으려는 게 아님을 세월이 흘러 알게 되었다. 그것은 겨우내 땅속에 알짜배기를 채운 냉이의 치열함을 인정하는 의식이었다. 그 손끝에서 냉이는 비로소 긴 침묵을 끝내고 식탁 위 봄으로 피어났다.


봄에 발아하는 대부분의 한해살이풀과 달리 냉이가 굳이 두해살이의 삶을 택한 데에는 분명한 전략이 숨겨져 있다. 먼저 시작한 덕분에 봄이 되면 다른 풀보다 한발 앞서 일정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다. 개화도 빨라 굶주린 곤충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더 튼튼하고 많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완연한 봄이 되면 냉이는 마지막 단계를 맞는다. 줄기가 위로 곧게 자라며 끝에 작고 흰 꽃이 핀 후 하트 모양의 씨앗 주머니가 달린다. 초여름에 이 주머니가 터지며 씨앗을 사방으로 퍼뜨리고 이내 흙으로 돌아간다.

생각해 보면 냉이의 생애는 경이롭다. 개화의 순간보다 오히려 겨울을 견디며 뿌리에 힘을 모으고 있을 때, 그때가 가장 충만한 순간이다. 낮은 자리에서 어렵게 자신을 준비한 시간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먼저 봄을 열 수 있었다.

냉이는 발견의 식물이다. 허리를 굽히고 시선을 낮추는 사람에게만 제 몸을 내어준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높이만을 삶의 절정이라 여기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로 결과를 원한다. 뿌리도 깊어지지 않았는데 줄기부터 세우려 한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고, 꺾인다. 냉이는 가장 낮은 곳에서의 시간이 삶을 지탱하는 진짜 힘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 옛날, 뿌리만 남은 냉이를 보며 '무엇을 먹느냐'라고 물었던 철없던 질문에 냉이는 여전히 향기로 답한다. 그리고 해마다 봄이 오면 다시 낮게 엎드린 제 몸을 보여준다. 화려하게 솟구치는 줄기는 잠시일 뿐, 고난 속에서 제 뿌리를 다지던 그 시간이야말로 냉이가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양식이다.

오늘 저녁 식탁에 올라온 향기롭고 달큼한 냉이를 마주한다. 겨우내 땅속에서 고독하게 쌓아온 생각의 맛이다. 그 단단함이 내 안으로 들어와 비로소 나의 봄이 시작된다. 봄은 위에서 오는 계절이 아니라, 아래에서 견뎌낸 것들이 밀고 올라오는 뜨거운 시간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제야.


냉이는 배추과(科)이나 꽃잎 4장이 (十) 모양이라 십자화과(科)로도 알려졌다. 전 세계 온대 지역에 흔히 분포하며 된장국, 죽, 무침 등으로 먹는다. 옛날부터 약초로 활용되었는데 ‘냉이를 세 번 먹으면 무병장수’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유익하다.

냉이처럼 잎이 지면에 방사형으로 퍼지는 형태를 ‘로제트(Rosette)식물’이라고 한다. 일명 방석식물이다. 장미잎이 둘러앉은 모양에서 유래했다. 두해살이풀인 냉이를 비롯해 민들레처럼 월동(越冬)하는 풀에서 볼 수 있다.

냉이꽃의 꽃말은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이다. 사랑과 헌신을 상징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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