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호박꽃도 꽃이냐?”
한때 이 말은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였다. 매화의 단아함이나 연꽃의 우아함처럼 절제된 미(美)가 칭송받던 시절에 담벼락 여기저기 투박하게 걸쳐진, 크고 두꺼운 호박꽃은 환영받지 못했다. 분명 꽃이지만 대접은커녕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호박같이 생겼다.”
꽃의 사례처럼 열매인 호박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천시할 때 고약한 농담처럼 툭툭 던져지던 이 말은,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기 일쑤였다. 애초에 사방으로 울퉁불퉁하게 자란 모양새가 매끄러운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었던 데다, 흔하다는 이유로 대접은커녕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탓이다.
이러한 비뚤어진 시선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겉모습보다 삶을 단단하게 채우는 실속에 눈을 돌렸다. 참살이(Wellbeing)라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거칠고 투박한 채소들의 가치를 찾기 시작했고, 누군가를 비하하던 무례한 농담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호박은 인간과 맺어온 관계에서도 특별함이 있다. 흔히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겹칠 때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다’라고 말한다. 왜 하필 그 흔하고 무시당했던 호박이 횡재의 대상이 되었을까? 호박은 넝쿨이 사방으로 뻗어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며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풍성한 결실을 전하던 그 고마운 넝쿨은, 어린 시절 우리 집 부엌까지 길게 뻗어와 있었다. 그 시절, 어머니는 유독 호박 요리를 자주 하셨다. 하루 종일 고단한 노동에 지쳐 돌아온 어머니에게 호박은 참 좋은 반찬거리였다. 값싸고 구하기 쉬웠으며, 무엇보다 살이 물러 금방 익었다. 지친 몸으로도 뚝딱 썰어 새우젓 한 숟갈 넣고 끓여내면, 부엌 가득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짭조름한 냄새가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어머니의 삶은 호박의 겉면처럼 거칠고 울퉁불퉁했지만, 그 속살은 자식의 허기를 채우는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였다.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호박도 원래 그런 채소다. 나 홀로 익어가지 않고 넝쿨을 뻗어 기어이 남의 집 담장을 넘었다. 자신의 풍요를 이웃과 나누려는 그 넉넉한 손길은 농경 슬롯의 따뜻한 정(情)이었다. 사람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는 제대로 익어가기 어렵다. 호박 넝쿨처럼 밖으로 뻗어갈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호박이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 머물며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켜온 호박 앞에 서면 보이는 것이 있다. 세상이 정한 예쁜 꽃의 기준에 들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겉모습은 곱지 않아도, 그 속에 깊고 부드러운 단맛을 품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문제는 모양이 아니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가 들어도 제 안의 단맛을 제대로 익혀내지 못하는 삶일지도 모른다. 남의 눈에 비치는 모습에 연연하기보다, 내면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갈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저녁, 식탁 위에 오른 호박 한 조각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단맛이 되어가고 있는지, 내 안의 넝쿨 하나가 뻗어나가 누군가의 삶에 가만히 스며들어 작은 위로가 되고 있는지 말이다.
잘 익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내 안의 온기를 주변에 조금씩 내어줄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삶이라면 굳이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호박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든든함,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호박은 박과(科)이다. 호박의 ‘호’는 박(瓠), 청나라(胡), 우리말 ‘둥글다’ 등 그 유래가 다양하다. 개량 품종이 많은데 ‘자이언트 펌킨’이라는 종은 무게가 1톤이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열매를 맺는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고 잡초와의 경쟁이나 병충해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며 채소 중에는 녹말 함량이 높다.
과거 노래 가사 ‘울릉도 호박엿’ 때문에 울릉도가 호박 주산지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후박나무 열매로 만든 후박엿이 잘못 알려졌다. 청양고추가 충남 청양이 아닌 경북 청송, 영양을 나타내는 것과 유사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