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자리에서 다른 말을 하는 이유
어느 날, 회의실에 다섯 사람이 모였다고 상상해 봅시다.
무릎이 아파 일본행 비행기를 알아보고 있는 60대 환자분. 그분의 주치의이자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정형외과 교수님. 10년째 줄기세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대학 연구자. 그 연구를 제품화하려는 바이오 기업의 임원.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을 제도로 설계해야 하는 보건복지부 공무원.
다섯 사람은 모두 ‘첨단재생의료’라는 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10분쯤 지나면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환자 및 시민: “왜 한국에서는 안 됩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의사: “해드리고 싶어도 절차가 너무 복잡합니다.”
연구자: “데이터가 더 필요합니다. 안전이 우선입니다.”
기업: “이대로면 우리는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어요.”
공무원: “모든 분의 입장을 다 듣고,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행정을 하고자 합니다.”
다섯 분 다 틀린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는 모두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만나면 자꾸 어긋납니다. 왜 그럴까요?
이 풍경의 비밀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다섯 사람이 같은 단어를 쓰는데, 마음속에 떠올리는 그림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첨단재생의료’라는 한 단어를 두고 다섯 사람이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환자 및 시민은 ‘절박함’의 언어로 말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습니다.” 그리고, '비용'의 언어로 말합니다. “그 돈이 결국 우리 세금 아닙니까?”
연구자 및 의사는 ‘가능성’의 언어로 말합니다. “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면…” , "치료가 가능하다면..."
기업은(는) ‘효율성’의 언어로 말합니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 "안전하고 싸게 공급할수만 있다면..."
정부은(는) ‘안전성’의 언어로 말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나면…” , "안전하고 안심하게 제공할 수 있다면..."
같은 회의실에 앉아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서로 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대화가 어긋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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