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하고 소리가 났다. 두 번째 바카라도 삑. 세 번째는 바코드가 잘 안 읽혀서 리더기 각도를 바꿔가며 몇 번을 댔다. 그동안 나는 카운터 앞에 서서 기다렸다.
동네 도서관에 이삼 주에 한 번쯤 간다. 평일 오후 두 시쯤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면 시간을 마음대로 쓸 듯한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다만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움직일 수는 있다. 그 시간의 도서관은 한산하다. 열람실 쪽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가끔 나고 복도 정수기에서 물 받는 소리가 난다. 신문 보는 어르신 몇 분과 방학이 아닌데도 앉아 있는 학생 몇이 전부다.
빌릴 바카라은 대개 세 권이다. 한 번에 다섯 권까지 되는데 세 권이 들고 나오기 적당하다. 네 권부터는 팔이 버티질 못한다. 그런데 이 세 권이 매번 한 덩어리로 묶인다. 원고 때문이다. 한동안 어떤 주제에 붙들리면 그 분야 서가 앞에 한참 서 있게 된다. 바카라 등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훑다가 고개가 기울고, 몇 권 뽑아 목차를 넘겨보다가 다시 꽂는다. 결국 두껍고 무거운 쪽으로 손이 간다. 얇은 바카라은 읽기 편한데 남는 게 적다. 서로 다른 분야를 한 권씩 빌리는 일은 거의 없다. 이번에 이 세 권, 다음에는 또 전혀 다른 세 권. 그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다.
카운터로 가져갈 때 팔이 뻐근하다.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가서 대출대 위에 내려놓는다. 쿵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는데 매번 조금 난다. 창구에는 아크릴 가림막이 섰다. 아래쪽에 바카라과 카드가 오갈 만큼 틈이 나 있고 그 위로는 막혔다. 말소리가 한 겹 걸러져서 들린다. 그래서 목소리가 낮으면 한 번씩 못 알아듣는데, 그럴 때도 되묻기보다 그냥 네 하고 만다.
그 안쪽에 앉은 사람은 대체로 같은 분이다. 이 시간대에 가면 늘 그 자리를 지킨다. 명찰을 달았는데 이름을 읽어본 적은 없다. 읽으려면 시선을 가슴께로 내려야 하니 안 하게 된다. 사서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다 사서는 아니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순환해서 오는 자리일 수도 있고 계약으로 일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 물어볼 일이 없으니 모르는 채로 지나간다.
회원증을 인식기에 댄다. 화면이 바뀌는 소리가 작게 난다. 카드는 지갑 맨 뒤 칸에 넣어두는데 꺼낼 때마다 엉뚱한 카드가 딸려 나온다. 그때 모니터가 조금 보인다. 화면은 저쪽으로 꺾여 있는데 카운터에 바짝 서면 귀퉁이가 시야에 들어온다. 회색 창에 표가 하나 떴다. 줄이 여러 개 쌓였고 왼쪽에 날짜, 오른쪽에 제목이 붙었다. 제목은 칸이 좁아서 뒤가 잘린다. 잘린 자리에 말줄임표가 찍힌다.
내가 빌려 갔던 바카라들이다.
지난달 것도 그전 것도 그대로다. 무슨 바카라이었는지 다 기억나지는 않는데 화면에는 그대로 남았다. 위쪽에 내 이름이 세 글자로 붙었고 옆에 번호가 달렸다. 기록이 남는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 남의 각도에서 보면 다르다. 내 쪽에서는 읽은 바카라이고 저 화면에서는 줄과 날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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