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 사랑은 장모
11월도 며칠 남지 않은 어느 하루. 아쉬운 계절 가을도 이제 끝이 보이는 듯싶다. 아침이라 그런지 겨울의 냄새를 조금씩 짓게 품어내는 듯했다. 바스락거리던 가을 낙엽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얼어붙는 계절. 하지만 도윤과 해수의 18평 남짓한 빌라는 갑작스레 굴러들어 온 불청객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매일이 소란스러웠다.
"야, 윤해성! 너 씻고 나와서 화장실 바닥에 물기 안 닦지! 내가 수건으로 한 번 훔치라고 몇 번을 말했냐!" "아, 정말 그놈의 잔소리는! 우리 매형 매일 이 잔소리를 어떻게 참고 산데. 나 지금 바빠. 제발 건들지 마. 지금 랭크 전 승급 매치 중이라고! 흐름 끊기면 누나가 바카라임질 거야?"
서재에 임시 거주 중인 해성은 벌써 이 주째 이 집에 기생 중이었다. 원룸 누수 공사가 예상보다 길어진다는 핑계로 아예 짐을 더 가져온 것 같았다. 평소 해수보다 먼저 퇴근하는 일이 많았던 도윤은 요즘은 빈 집에 들어와 불을 켜는 저녁보다 해성의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현관문을 들어서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고요했던 두 사람의 일상 대신 왁자지껄한 소음과 제자리가 아닌 곳에 어지럽게 흩어진 물건들이 있었지만, 도윤은 오히려 그 소란스러운 활기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잔뜩 열이 오른 해수의 어깨를 슬쩍 주물러주며 처남 편을 들고, 헤드셋을 끼고 모니터에 코를 박은 처남에게 물 한 잔을 떠다 주는 일상이 즐거웠다. 예전 같았으면 예민하게 반응했을 이 소음조차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삶인 것 같아서 도윤의 마음을 따뜻하고, 빈틈없이 꾹꾹 눌러 채워주었다.
토요일 아침 8시. 한 주간 출근을 위해 이른 시간부터 강제 각성했던 몸과 마음을 이완하기 위해 주말의 늦잠은 꿀만큼이나 달콤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시간을 침실 머리맡에서 요란하게 울어대는 해수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깨웠다.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던 해수가 눈을 감은 채 손을 더듬어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주말 아침부터 왜..."
잠투정 섞인 해수의 목소리가 10초도 지나지 않아 날카로운 비명으로 변했다.
"뭐어?! 배추가 오늘 도착했다고? 아니, 절임 배추 예약한 거 다음 주 수요일이라며! 뭐? 날짜를 착각해? 백 포기를?!"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난 해수의 고함 소리에, 옆에서 자고 있던 도윤도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수화기 너머로 장모님의 다급하고 당황한 목소리가 웅얼웅얼 새어 나왔다. 해수의 얼굴은 당혹스러움에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니, 이모 두 분도 오늘 동창회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 엄마랑, 아빠 둘이서 김장 백 포기를 어떻게 다 끝내! 아, 진짜! 알았어, 알았어. 내가 지금 준비해서 갈 테니까, 허리 아픈데 절대 무리해서 양념통 들지 말고 내가 갈 때까지 가만히 있어!"
전화를 끊은 해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 발을 들고 허공을 찼다.
"아 진짜 미치겠네. 우리 엄마 사고 쳤어! 김장 배추 백 포기가 지금 마당에 쌓여있대. 별로 도움 안 되는 아빠랑 둘이서 김장하다가 우리 엄마 허리 작살나게 생겼어!"
그 말을 듣자마자 도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옷장 문을 벌컥 열어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꺼내 입으며 해수에게 고갯짓을 했다.
"뭐 해, 윤 팀장님. 당장 출동해야지."
"서도윤, 넌 빠져. 너 지금 컨디션 좋아졌다고 몸 함부로 막 쓰다가 또 안 좋아지면 어쩌려고 그래. 김장이 얼마나 중노동인데."
해수가 만류했지만, 도윤은 입고 있던 티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자신의 전완근에 힘을 줬다. 얼핏 봐서는 전완근이 단단하게 부풀었는지 힘을 주느라 일그러진 얼굴에 근육이 붙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지난번 내가 바카라장 미는 거 봤지? 나 정말 건강하거든. 장모님 허리는 내가 지킬 테니 걱정은 붙들어 매기나 해. 그리고 저기 서재에서 언제 일어났는지, 아니면 아예 잠을 안 잤는지도 모를 게임 중독자도 끌고 가야지.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냐."
5분 뒤, 헤드셋을 낀 채 모니터 속 세상을 누비던 해성은 해수에게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 맞고 끌려 나왔다. "아, 누나! 나 지금 죽으면 팀원들한테 쌍욕 먹는다고!"
"네가 김장하러 안 가면 나한테 쌍욕 먹고, 아버지한테 얘기해서 이번 기회에 호적서 파 버린다."
해성의 불만 섞인 절규가 있었지만 해수의 살벌한 협박에 다시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차를 몰아 도착한 처갓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광경이 세 사람을 반겼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성인 남성이 들어가 목욕을 해도 될 법한 거대한 빨간 고무 대야 세 개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차곡차곡 잘 쌓인 절임 배추 상자들이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다.
마당 한편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마늘을 까고 있던 장모님과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구원 투수처럼 등장한 세 사람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고! 우리 딸 왔어! 서 서방도 왔는가! 내가 날짜를 착각해 가지고 이 사달을 냈네, 주말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미안해서 어쩌누."
장모님이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자, 도윤은 성큼성큼 다가가 장모님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