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검사 결과
거울 속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묘하게 낯설고, 또 처연했다.
도윤은 세면대 대리석 상판을 양손으로 꽉 짚은 채, 거울 가까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림자 하나 없는 욕실의 밝은 조명은 몰라보게 푸석해진 그의 얼굴을 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관자놀이 부근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짝 들추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희끗희끗한 새치 여러 가닥이 무리 지어 돋아나 있었다.
떨리는 손끝으로 이마와 눈가를 쓸어내리자, 예전에는 없던 미세한 주름들이 피부 결을 따라 얕게, 그러나 분명한 흔적으로 패어 있었다. 탄력을 잃고 푸석해진 뺨은 면도를 꼼꼼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생기가 빠져나가 거뭇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불과 서른을 갓 넘긴 남자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피로감이 그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2021년 4월. 해수를 살리기 위해 1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온 지도 어느덧 4년 가까운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강산이 반쯤 변할 그 시간 동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삶은 완벽하게 정반대의 궤도를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가장 눈부신 변화의 주인공은 단연 해수였다. 타임슬립 직후 도윤이 미친 사람처럼 집착했던 '해수 생존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도윤의 지독하고 철저한 식단 관리와 스트레스 원천 차단 덕분에, 걸핏하면 위경련을 일으키고 소화제를 달고 살았던 해수의 연약한 위장은 완벽하게 건강을 되찾았다. 맵고 짠 배달 음식과 혀가 마비될 듯한 매운 떡볶이는 그들의 집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대신 도윤이 매일 두 팔을 걷어붙이고 정성껏 차려낸 저자극 건강식과, 주말마다 도윤의 손에 이끌려 나간 억지 산바카라은 그녀의 기초 체력을 몰라보게 끌어올렸다.
신체적인 건강함은 곧바로 그녀의 삶 전체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넘치는 활력을 바탕으로 회사 업무에 더 몰입한 해수는 동기들 중 가장 먼저 팀장 보직을 거머쥐었다. 최근에는 업계에서 굵직한 코스메틱 브랜드 마케팅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일찌감치 에이스로 이름표를 단 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화장대 앞에 앉은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생기가 넘쳤고, 하이힐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경쾌했다. 도윤이 온 목숨을 바쳐 지켜내고자 했던, 그 눈부시도록 평범하고 찬란한 일상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이다. 도윤의 시계는 해수와는 엇갈린 궤도를 그리며, 어둡고, 알 수 없는 종착지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아으..."
도윤은 세면대를 짚었던 손을 떼어내며 자신도 모르게 낮고 앓는 듯한 신음을 뱉어냈다. 굽혔던 허리를 펴는 지극히 단순한 동작이었을 뿐인데, 척추 마디마디가 뻣뻣하게 굳어 삐걱거리는 듯한 둔탁한 통증이 허리 아래로 퍼져나갔다. 단순히 회사에서 야근을 많이 하거나 운동이 부족해서 느끼는 피로감이 절대 아니었다.
이것은 뼈와 근육의 밀도가 서서히, 그러나 명백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기분. 혈관을 타고 흐르던 뜨거운 기력이 조금씩 식어버려, 끝내는 앙상한 껍데기만 남겨질 것 같은 썩 좋지 않은 감각이었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억지로 거스른 대가로 신이 도윤에게 청구한 '수명 단축'의 페널티는 지난 4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도윤의 몸을 소리 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도윤은 황급히 화장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한 뒤, 닫힌 문에 등을 기대고 스르르 주저앉았다. 바닥으로 푹 꺼질 것만 같은 지독한 피로감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서늘한 한기가 몰려왔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찢어져서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저 몸을 구성하는 시간의 태엽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풀려나가며 껍데기만 남겨지는 설명하기 힘든 무기력함이었다. 그는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려 얼음장 같은 찬물을 틀었다.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물을 받아 거칠게 얼굴에 연거푸 끼얹었다. 차가운 냉기로 마비되어 가는 세포를 억지로 깨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낸 도윤은 심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화장실 거울을 향해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완벽한 미소를 연습했다. 핏기가 가신 입술을 비장하게 깨물며 다시 한번 스스로의 뇌리에 채찍질하듯 주문을 걸었다.
'티 내지 마라, 서도윤. 아직 4년이나 남았어. 해수가 그 끔찍한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2025년 겨울, 그 운명의 해를 무사히 넘길 때까지... 이깟 몸뚱어리 다 부서지더라도 버텨야 해.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물거품이 돼.'
얼굴에 찬물을 몇 번 더 끼얹고, 볼을 세차게 두드리며 억지로 혈색을 만들어낸 도윤이 태연한 척 화장실 밖을 나섰다.
안방 거울 앞에서는 출근 준비를 마친 해수가 기분 좋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립스틱을 덧바르고 있었다. 네이비색 실크 블라우스에 단정한 슬랙스, 살짝 웨이브를 넣은 윤기 나는 갈색 머리칼까지. 10년 지기 친구라는 콩깍지를 빼고 보아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당찬 커리어 우먼의 모습이었다.
"여보! 나 오늘 머리 볼륨 좀 엄청 잘 산 것 같지 않아? 엊그제 새로 바꾼 헤어 에센스 진짜 잘 산 것 같아. 향기도 딱 완전 내 취향이야."
해수가 거울을 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자, 도윤이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다가가 그녀의 뒤에 섰다.
"오-, 진짜네. 우리 윤 팀장님 오늘 미모가 완전 전성기 때 저리 가란데? 폼 미쳤다, 진짜. 부하 직원들이 팀장님 얼굴에서 빛이 나서 눈부시다고 일 집중 못 하는 거 아니야? 선글라스라도 끼고 결재받으러 가야 할 거 같네."
도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해수의 뭉친 어깨를 다정하게 주물러주었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도윤과 장난스럽게 눈을 맞추던 해수의 콧노래가 일순간 뚝, 하고 멈췄다. 거울 속 도윤의 안색이 조명으로 밝은 안방에서도 확연히 티가 날 만큼 푸석하고 거칠었기 때문이다. 미소를 짓고 있는 도윤의 눈 밑으로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고, 어깨를 주무르는 손아귀의 힘마저 평소와 달리 시원함이 덜했다.
해수는 들고 있던 립스틱을 화장대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 도윤의 얼굴을 양손으로 꽉 감싸 쥐며 미간을 찌푸렸다.
"야, 서도윤. 너 또 안색이 왜 이래? 어제 잠 못 잤어? 요새 프로젝트 마감 다가온다고 무리하더니, 나 자는 동안 서재에서 또 밤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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