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다음 날 아침, 일요일 늦잠을 만끽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도윤은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아니, 정확히는 밤새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제 차 안에서 갑작스레 터졌던 코피 사건은 다행히 해수에게 들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쏜살같이 뛰어들어간 덕에 황급히 피 묻은 옷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도윤은 새근새근 잠든 해수가 깰까 봐 숨죽여 안방을 빠져나온 뒤, 화장실 문을 조심스레 닫고 쪼그려 앉았다. 세면대 아래 빨래 바구니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하얀 면티를 꺼내 들었다.
그는 세면대에 서서 차가운 물을 틀었다. 핏자국이 묻은 옷을 따뜻한 물로 빨면 단백질이 굳어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얼음장 같은 찬물에 면티를 적셨다. 세탁비누를 잔뜩 묻혀 붉은 얼룩을 미친 듯이 벅벅 문질러 빠는 도윤의 손길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건 절대 들키면 안 돼. 내가 어제 코피 쏟은 걸 알면, 가뜩이나 위도 안 좋은 윤해수 성격에 또 내 걱정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속을 끓일 게 뻔하니까.'
시간을 거스른 대가로 날아온 잔인한 청구서. 그것이 정확히 자신의 수명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갉아먹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기괴하고 끔찍한 형태의 고통으로 숨통을 조여올지 도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명확한 것은 이 모든 잔인한 페널티를 철저하게 자신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찬물에 손이 시렸지만 도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핏자국 하나까지 완벽하게 지워냈다.
"야, 서도윤. 너 거기서 뭐 해?"
순간, 굳게 닫혀있던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부스스한 머리의 해수가 눈을 비비며 서 있었다. 놀란 도윤이 '헉' 소리를 삼키며 등 뒤로 축축하게 젖은 하얀 면티를 황급히 숨겼다.
"어? 어, 일어났어? 화, 화장실 청소! 일찍 잠이 깨서 거울 좀 닦고 화장실 청소하고 있었지!"
"일요일 아침 꼭두새벽부터 웬 화장실 청소? 너 등 뒤에 꼬깃꼬깃 숨긴 건 뭔데. 너 혹시... 나이 서른에 오줌이라도 싼 거야? 헐, 서도윤 오줌싸개!"
"뭐, 뭐어? 야! 내가 무슨 유치원생 꼬맹이인 줄 아냐! 어제 고기 구워 먹다 기름이랑, 김치 국물 튀어서 얼룩 남을까 봐 아침부터 비벼 빤 거거든?"
해수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도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하품을 길게 늘어뜨리며 변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휴, 유난은. 깔끔 좀 적당히 떨어라. 비켜봐, 나 쉬 마려워."
천연덕스럽게 잠옷 바지를 훌렁 내리려는 10년 지기 아내의 털털함에 도윤은 기겁을 하며 화장실 밖으로 튕겨 나갔다.
"해수야-! 문은 닫고 싸야지!"
"부부 사이에 뭘 새삼스럽게! 얼른 나가서 아침이나 차려!"
쾅-, 문이 닫히고 나서야 도윤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일촉즉발같은 상황에서 말 그대로 위기 모면이었다.
그날 저녁, '해수 생존 프로젝트 1단계'의 첫 번째 항목인 '식습관 강제 개조'를 달성하기 위한 실전 미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맵고 짠 바깥 음식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도윤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월요일 출근용 '도시락 싸기'였다.
평소 해수는 매일 아침 8시 반이면 회사 앞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러 샷을 두 개나 추가한 쓰디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텅 빈 위에 들이붓곤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만 되면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자극적인 마라탕이나, 맵고 짠 짬뽕 같은 음식으로 연약한 위장을 무자비하게 혹사시켰다. 도윤이 싸는 도시락은 그 끔찍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도윤은 주방에 서서 데친 양배추를 도마 위에 넓게 펼치고, 그 위에 간을 거의 하지 않은 닭가슴살과 두부를 으깨어 조심스럽게 돌돌 말기 시작했다. 소금은 아주 약간만, 대신 고소한 참기름을 살짝 발라 풍미를 입힌 완벽한 저자극 다이어트식 건강 롤이었다.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며 TV를 보던 해수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코를 킁킁거렸다.
"서도윤, 주방에서 또 사부작사부작 뭐 해? 냄새가 꼭 산 새 좋은 사찰에서 나는 절밥 냄새 같은데?"
"내일 윤 대리님 회사에 가져가실 도시락 쌉니다. 밖에서 또 짜고 매운 찌개 같은 거 사 먹지 말고, 내일은 무조건 이거 먹어. 위궤양 환자 맞춤형 양배추 두부 롤이야."
"뭐어? 내가 무슨 초식동물 토끼야? 나 내일 점심에 팀원들이랑 불맛 나는 고기 짬뽕 먹기로 이미 약속 다 해놨단 말이야!"
"닭가슴살이 들어서 초식은 아니거든. 그리고 짬뽕?! 미쳤어?! 위궤양 환자가 그 새빨간 짬뽕 국물을 상처 난 위에 들이 붇는다고? 절대 안 돼! 너 내일 내가 싼 이 도시락 안 먹고 다른 거 먹다 걸리면, 나 진짜 짐 싸서 가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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