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다시 너의 남편이 될게

by추억바라기

결혼 후에도 도윤의 일기장 쓰기 습관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짝사랑의 고통이 아닌 달콤하고 신나는 신혼의 일상을 신나게 기록하는 기쁨의 일기장이 되었다.

‘오늘은 해수가 인터넷 레시피를 보며 야심 차게 된장찌개를 끓여줬다. 솔직히 한 입 먹는 순간 바닷물을 그대로 냄비에 퍼 온 줄 알았다. 소금국 그 자체였지만,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먹는 척 완벽한 연기를 하며 꾸역꾸역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나중에 설거지하다가 냄비에 남은 내 국물을 맛본 해수가 "야! 서도윤! 너 미각 잃었어? 이 짠 걸 어떻게 다 먹었어!"라며 경악을 해서 들키긴 했지만. 그래도 날 생각해서 요리하겠다고 앞치마를 두르고 냄비를 닦으며 부끄러워하는 해수의 뒷모습이 내 눈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내일은 무조건 내가 요리해야지. 우리 해수 위장 다 버리겠다.’

일기장 페이지마다 둘 사이의 평범하지만 따뜻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둘이 함께 낑낑대며 거실에 놓을 조립식 가구를 맞추다 부품이 모자라 서로 네가 버린 거 아니냐며 초딩처럼 유치하게 싸웠던 일하며, 여름휴가로 떠난 캠핑장에서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텐트 안에서 덜덜 떨며 컵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바들바들 떠는 처량한 몰골을 보고 깔깔대던 아침 하며, 주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서로의 퉁퉁 부은 못난 얼굴을 보며 놀려대던 소박한 날들까지 소소한 해프닝들이 빼곡히 담겨 기록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무심코 툭 펼쳐보는 일기장 속에는 두 사람이 켜켜이 쌓아 올린 눈부시고, 따뜻한 일상의 파편들이 흠집 하나 없는 보석처럼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췌장암이라는 잔인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내의 병상 옆, 도윤의 무릎 위에 펼쳐진 일기장의 가장 최근 페이지들은 온통 도윤이 흘린 눈물 자국으로 얼룩져 종이가 쭈글쭈글하게 울 거 있었다. 글씨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형편없이 흔들렸고,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짙은 절망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간절함 그리고 지독한 자바카라만이 가득 배어 나왔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해수의 아픔을 눈치챘더라면. 매일 쏟아지는 야근에 지쳐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서도, 내가 걱정할까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생각해 보면 해수는 이미 피곤으로 핼쑥해진 얼굴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라면. 해수가 소화가 안 된다며 습관처럼 알약 소화제를 입에 털어 넣으며 명치를 부여잡았을 때, 그냥 체한 거라며 넘기던 해수를 억지로라도 큰 병원에 끌고 가 정밀 검사를 받게 했어야 했는데.'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은 법이었다. 도윤은 만년필을 쥔 오른쪽 손에 만년필이 부러질 듯 강한 힘을 주었다. 다이어리 빈 페이지 하얀 백지 위로 굵고 뜨거운 눈물이 툭, 툭 떨어져 검은 잉크를 어지럽혀 번지게 만들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을 힘주어 애써 고정시키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2025년 11월 12일. 우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내 세상의 전부이자 내 우주의 중심인 당신이, 나를 홀로 남겨두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열여덟 살에 만나 10년을 친구로, 또 10년을 둘도 없는 부부로 살았는데... 아직도 널 보면 설레고, 해주고 싶은 말이 태산같이 산더미인데. 아파서 신음하는 널 내 힘으로 붙잡을 수도, 네 몸을 갉아먹는 그 끔찍한 고통을 내가 반으로 뚝 떼어 나눠 가질 수도 없는 나의 이 무능함이 미치도록 혐오스럽고 저주스럽습니다.』

숨을 참고 글을 써 내려가던 도윤은 결국 억눌렀던 감정의 둑이 터져버려 소리 없이 무너져 오열하기 시작했다. 울음소리 때문에 해수가 깰까 봐 입술을 꽉 깨물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일기장 위 놓인 손에 다시 힘을 줬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쓰러지기 직전의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방법이었다. 종이가 찢어질 듯 꾹꾹 눌러 적으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제발... 제발 한 번만 제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시간을 당신이 앗아가도, 아니 내 목숨을 빼앗아가도 좋으니... 내가 간절히 원하는 단 하나의 소원만큼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만일 내게 딱 하나의 기적과 같은 소원이 허락된다면 내 사랑하는 아내 해수와 10년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만 더 함께 사랑하게 해 주세요. 네, 딱 10년이면 충분합니다. 더는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다. 10년만 더 함께 살아 숨 쉬게 해 주세요. 우리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이 기적처럼 허락된다면, 1분 1초를 아끼며 내 피와 살, 내 모든 걸 걸고 그녀의 건강을, 그녀의 웃음을 완벽하게 지켜내겠습니다. 제발... 그녀가 없으면 쓸모 없어질 내게 남은 시간을 거두어 가시고, 그 시간을 그녀에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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