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께.
이 사연을 보내면
사람들이 저를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욕을 먹을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냥 다 끊어라.”
“대체 몇 사람을 끼고 사느냐.”
“그게 무슨 사랑이냐.”
그런 말이 나올 거라는 걸
저도 압니다.
그럼에도 보내는 건
저도 제 삶을 한 번은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하면 안 되는 사랑 사연들을 읽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끝나본 적이 없구나.
누군가와 진짜 이별해 본 적도 없고,
사랑이 끝난 뒤에 어떻게 무너지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어쩌면
지금 너무 편하게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젠가
저한테도 끝이 올 텐데,
그때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을까.
그게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40대 중반의 여자이고
의사입니다.
겉으로 보면
단정한 삶입니다.
직업도 있고,
돈도 있고,
생활도 안정되어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문제없는 인생일 겁니다.
그런데 제 일상은
조금 다르게 흘러갑니다.
남편이 있습니다.
애정으로 결혼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집안끼리 조건을 보고
맞춰서 결혼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처음부터
취미도, 정서도, 성격도,
살아가는 방식도
맞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결혼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맞추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지방에 있고,
저는 수도권에서 병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오래전부터
주말부부 비슷한 생활을 해왔고,
지금은 서로를 크게 건드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의 사생활을
굳이 들추지 않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남편에게도
다른 여자가 있습니다.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지만
여자는 알잖아요.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굳이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도 대비는 해두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제 쪽을 문제 삼을 때를 대비해서,
남편 쪽의 사생활 역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결혼은
깨끗해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서로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유지되는 면이 있습니다.
남편도
이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에겐
예전에 사랑했던 남자가 있습니다.
결혼까지는 못 갔지만
오래 사귀었고,
가장 깊이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완전히 끊어지진 않았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고,
저는 일주일에 두세 번쯤
그의 집에 들릅니다.
반찬을 해다 주고,
음식을 챙겨주고,
때로는 청소도 도와줍니다.
누가 보면
오래된 부부처럼 보일 겁니다.
사실 그 관계는
이제 사랑이라기보다
생활에 가깝습니다.
너무 오래됐고,
너무 익숙해졌고,
서로의 약한 부분까지 다 알아버린 관계.
그 사람이
저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것도 알고,
저 역시 그를 완전히 놓지 못하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결혼까지 못 간 이유도
결국 그겁니다.
내가 계속
뒷바라지를 해줘야 하는 관계.
끌고 가야 하는 관계.
처음에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쳤습니다.
너무 오래된 사람이라
그냥 남처럼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자동차 동호회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유부남입니다.
연하이고,
센스가 있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법을 아는 남자입니다.
무엇보다
취향이 너무 잘 맞습니다.
차, 음악, 식사,
움직이는 동선,
대화의 결,
같이 웃는 타이밍까지.
처음엔
그냥 즐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연애하는 기분이 생겼습니다.
같이 피부 관리를 받으러 다니고,
멀리 있는 네일숍 근처에서 만나
차를 마시고,
손을 잡고,
사람들 앞에서도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그게
너무 달콤합니다.
일부러
그 감정을 느끼려고 만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사람과 있으면
아직도 내가 연애할 수 있는 여자라는 걸 느낍니다.
남편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
오래된 남자에게서는 이미 사라진 감정.
그걸
지금 이 남자는 줍니다.
그래서
이 관계는 분명히 좋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선을 정했습니다.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라고.
이혼도 없고,
결혼도 없고,
미래도 없고,
그냥
연애하는 감정까지만.
서로
그 정도만 합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저는 요즘
이렇게 살고 있는 제가
가끔 낯섭니다.
남편이 있고,
오래된 남자가 있고,
지금 연애하는 남자가 있고,
셋 다
다른 방식으로
제 삶에 들어와 있습니다.
남편은
제도를 유지해 주는 사람이고,
오래된 남자는
익숙함과 바카라임이 남아 있는 사람이고,
지금 남자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셋 다
애매하고,
셋 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잘 굴러갑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가끔은
이러다 언젠가 다 끊어지겠지
싶습니다.
남편도,
오래된 남자도,
지금 남자도.
그러면
나는 무엇이 남을까.
반대로
이대로 가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저는
생각보다 불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꽤 잘 살고 있습니다.
그게 더 이상합니다.
그래서
이 사연을 보냅니다.
언젠가
이 중 하나라도 끝나면,
저는 분명 흔들릴 겁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끝내본 적이 없습니다.
늘 조금씩 남겨두고,
조금씩 이어 두고,
조금씩 도망치듯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이쯤 되면
저는 뭘 선택해야 하나요.
안정일까요.
익숙함일까요.
지금의 감정일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요.
-40대 중반,
세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여자
편지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당신은
세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대신
세 가지 다른 삶을
세 사람에게 나눠서 붙잡고 있습니다.
남편은
무너지지 않는 삶입니다.
애정은 없지만
제도가 있교,
이름이 있고,
슬롯적으로 안정된 자리가 있습니다.
오래된 남자는
습관처럼 남은 삶입니다.
사랑이 다 지나갔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이 함께했고,
남이라고 하기엔
너무 깊이 생활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남자는
살아 있는 감정입니다.
연애하는 기분,
내가 아직도 누군가에게 설레고,
누군가와 웃고,
누군가 앞에서 여자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감각.
당신은 지금
이 세 가지를
하나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셋 중 무엇 하나를 놓는 순간
당신 인생의 한 축이 빠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놓으면
안정이 흔들릴 것 같고,
오래된 남자를 놓으면
오래 쌓인 익숙함이 무너질 것 같고,
지금 남자를 놓으면
지금 살아 있는 감정이 꺼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셋을 다 붙잡고 있는 거지요.
겉으로 보면 화려합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꽤 외롭습니다.
왜냐하면
셋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셋 중 누구에게도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겐 애정이 없고,
오래된 남자에게는 미래가 없고,
지금 남자와는 처음부터 끝을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가진 삶이 아니라
계속 미루는 삶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번 편지의 중요한 지점은
당신이 처음으로
그걸 자각했다는 겁니다.
“언젠가 끝이 오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 질문을 했다는 건
지금이 편안해서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지금이 너무 오래 이어져서
불안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누가 제일 좋으냐를 고르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무엇이 제일 없으면 못 살 것 같은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안정이 제일 필요한지,
익숙함이 제일 편한지,
지금의 감정이 제일 소중한지.
그걸 모르고 계속 끌고 가면
언젠가 누군가가 먼저 선택해 버릴 겁니다.
남편이,
오래된 남자가,
지금 남자가.
그때 당신은
처음으로 끝을 당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이 편지는
욕을 먹으려고 보낸 편지라기보다
처음으로 자기 삶의 끝을 상상해 본 사람의 편지에 가깝습니다.
그 점은
충분히 진지하게 읽혔습니다.
한 여자가 있습니다.
남편이 있습니다.
오래된 남자가 있습니다.
지금 연애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남편은 안정이고,
오래된 남자는 익숙함이고,
지금 남자는 감정입니다.
셋 다
다른 방식으로
그 여자의 삶을 붙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연을 어떻게 보십니까.
1. 너무 이기적이다. 결국 셋 다 놓게 될 사람이다
2. 현실적으로 버티기 위해 각기 다른 관계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3. 애정 없는 결혼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4. 지금은 유지돼도 언젠가 반드시 무너질 관계다
사람이
안정, 익숙함, 감정
이 셋을
한 사람에게서 다 얻지 못할 때
여러 사람에게 나눠서 붙들며 사는 것.
그건
현실적인 걸까요,
위험한 걸까요.
마지막으로,
끝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젠가
끝을 당하게 될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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