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인 줄 알고 따라갔는데… 상대가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작가님께.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하면 안 되는 사랑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고,
어머니는 제자였습니다.
둘은 사랑했고
저는 태어났습니다.
누군가는
그걸 운명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사랑은
누군가의 자리를 무너뜨리고 시작된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는 학교를 떠났고,
아버지는 가정을 정리하고
저희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누군가의 상처 위에서 시작된 아이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선생님이고,
집이 있고,
밥을 먹고사는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전처 자식들이
가끔 집에 찾아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부터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문이 열리면
높아진 목소리,
거칠어진 말투,
숨죽이는 공기.
생활비 이야기가 오갔고,
억울함이 쏟아졌고,
분노가 남겨졌습니다.
어릴 때는
그 사람들이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저는
사랑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결국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도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 한가운데 있는 아이입니다.
가끔
아이를 보면
그 생각을 합니다.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
아버지와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때는
이상하게도
그게
잘못이라는 감정보다
숨이 트이는 느낌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 이런 거였구나.”
제 아내는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회식이라고 말해놓고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어둔 날.
그 통화 속에서
제가 다른 여자와 나누던 대화를
아내는 그대로 듣게 됐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
그날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저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그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미안했고,
부끄러웠고,
그걸 반복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조용한 부부가 된 것처럼 살았습니다.
싸우지도 않았고,
문제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관계.
겉으로 보면
안정된 부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괜찮아진 게 아니라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채
그대로 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에게서 아주 작은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간다고 말하는 순간,
잠깐의 망설임이 끼어들었고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습니다.
그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면서
그 순간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같이 살다 보면 압니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뭔가 다르다는 느낌.
그래서
그날은
그냥 따라가 봤습니다.
차를 조금 떨어진 곳에 세우고
아내가 들어간 공원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이른 주말 아침이었습니다.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를 봤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아는 사람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여자였습니다.
둘은
자연스럽게 붙어 있었고,
손을 잡고 있었고,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조용히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아내가
그 사람을 끌어안았고,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졌고,
입을 맞췄습니다.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소리도 없었고,
설명도 없었고,
그냥
그 장면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서 있었습니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게 뭐지”
그 생각 하나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돌아서 나왔습니다.
더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 보면
뭔가가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희는
오랫동안
부부 관계도 없었고,
감정도 많이 식어 있었습니다.
조용했고,
깔끔했고,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이게
아내의 정체성인지,
감정인지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어떤 흐름인지
저는 지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걸
마주할 용기가 없습니다.
제가 먼저
같은 잘못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걸 꺼내는 순간
지금의 관계가
완전히 끝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님,
이건
배신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너무 오래
서로를 보지 못한 결과일까요.
저는 지금
이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결혼 20년 차,
어떤 장면에서 멈춰버린 남자
이 편지를 읽으며
저는 한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을 본 느낌이었습니다.
당신이 목격한 건
어떤 사건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던 관계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결과에 더 가깝습니다.
당신은 한 번
관계를 벗어난 적이 있었고,
아내는
그걸 알고도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이 관계는 이미
“겉으로는 유지되지만
안에서는 멈춘 상태”
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멈춘 관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흐르지 못한 감정은
다른 방향을 찾습니다.
당신은
밖으로 향했고,
아내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이 본 장면을
단순히 “외도”라고 부르는 순간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이건
누군가를 배신했다는 이야기이기 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오래
닿지 못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이 느낀 감정이
분노가 아니라 혼란이었다는 점.
그건
이 상황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판단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이 관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정의할 것인지.
이건
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이 상태를 계속 견딜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 관계를 정리하려는 사람입니까.
그 답에 따라
이 관계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사랑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바카라임이 따라옵니다.
지금은
그 바카라임을
어떤 방식으로 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이 사연은
단순한 외도 이야기일까요.
한때 ‘하면 안 되는 사랑’으로 시작된 가족
그 안에서 자란 한 사람
반복된 선택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사랑
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1. 명백한 배신이다
2. 관계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상태다
3. 성 정체성과 감정의 문제다
4. 서로가 서로를 놓친 결과다
과거에
내가 관계를 한 번 무너뜨린 적이 있다면,
지금 상대의 변화는
배신일까요,
아니면
이미 시작된 결과일까요.
결혼에서 더 위험한 건 무엇일까요.
한 번의 외도일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버텨온 침묵일까요.
그리고 이 질문은 조금 더 어렵습니다.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당신이 알던 방식과 다른 방향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건
“나를 떠난 것”일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내가 다 알지 못했던 것”일까요.
이건 상황을 바꿔보는 질문입니다.
만약 반대로,
남편이
남자를 만나고 있는 장면을
아내가 목격했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같은 온도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일까요.
그리고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사랑이
우리가 알고 있던 형태가 아닐 때,
그 관계는
지켜야 할 관계일까요,
아니면
놓아야 할 관계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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