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미인식"
아침에 렌즈를 낀다. 시야 위쪽에 오늘 날씨와 일정과 지하철 경로가 얹혀 뜬다.
몇 년째 같은 방식이라 이제는 렌즈로 보는 것인지 그냥 보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옆자리 남자의 정보가 시야 왼쪽에 뜨지만 나는 보지 않는다.
매번 다 보면 하루가 피곤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산다.
정보는 뜨지만 안 본다. 뜨는 것에는 익숙해졌다.
렌즈가 상용화된 지 4년이 됐다.
처음엔 사생활이니 정보 격차니 하며 반대가 심했지만, 편리한 건 결국 이겼다.
시야에 들어온 사람의 공개 데이터가 자동으로 뜨고, 서로의 접점이 계산되어 나온다.
접점 있음(강)
접점 있음(약)
접점 없음
세 단계.
이제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아무도 이름을 묻지 않고 나이도, 뭘 하는 사람이냐고도 묻지 않는다.
렌즈가 다 알려주니까.
처음이라는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렌즈를 벗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극소수다. 눈이 안 좋거나 알레르기가 있거나, 아니면 그냥.
벗은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정보 대신 회색 아이콘 하나가 뜬다.
미인식
월요일에 회사에 새 팀원이 왔다.
처음 마주쳤을 때 그의 정보가 시야에 떴다.
김선호, 32세, 미혼
이전 회사 마케팅 팀
이직 사유 조직 문화 부적응
최근 감정지수 안정
부친 사망 2년 전
취미 등산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인사가 짧았다. 물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같은 렌즈로 나를 봤을 테니 나에게 물을 게 없었을 것이다.
자리에 앉으니 그의 이력 목록이 잠깐 시야 옆에 남아 있다가 사라졌다.
오후 팀 회의에서 그가 발표를 했는데 자료 감각이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케팅 팀에서 온 사람의 흐름이 아니었지만 렌즈가 마케팅이라고 했으니 마케팅일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화요일 저녁 퇴근길 지하철에서였다.
한 남자가 개찰구를 지나면서 날 봤고, 렌즈가 그의 정보를 띄웠다.
이한섭, 35세
서울에서 인쇄소 운영
접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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