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정

끄기로 한 얼굴

by미제


얼굴을 켜지 않고는 아무도 밖에 나가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필터를 켜는 것이다.

피부의 결을 고르고 윤곽을 다듬고 표정의 미세한 떨림까지 매끄럽게 눌러주는 보정.

켜고 나면 거울 속에 매일 같은 얼굴이 있다. 어제와 같은 흠 없는 얼굴이.


맨얼굴로 다니는 건 벗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필터가 상용화된 지 오래라 이제 사람들은 서로의 진짜 얼굴을 볼 일도 볼 이유도 없었다.

보정된 얼굴이 곧 그 사람의 얼굴이었다.




연인은 멀리 살았다.


기차로 세 시간. 자주 볼 수 없으니 만나는 날은 늘 조심스럽고 조금 들떴다.

화면 너머로 매일 이야기를 나눴지만 화면 속 얼굴은 둘 다 필터가 켜진 얼굴이었다.

서로 보정된 얼굴로 사랑을 나눴고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연인 사이에는 암묵적인 예의가 있었다.

상대 앞에서는 보정을 한 단계 낮추는 것. 낮출수록 가까운 사이였다.


우리 둘도 서로 꽤 낮춘 사이였는데 끝까지 완전히 낮추지는 않았다.

마지막 한 겹은 남겨두었다.

상대가 부담스러울까 봐, 아니면 자기가 완전히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오랜만에 왔다.

좁은 방에 마주 앉았다.




일이 일어난 건 그 저녁이었다.


갑자기 방이 이상해졌다. 정확히는 서로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지지직 흔들리더니 매끄럽던 표면이 벗겨졌다. 필터가 꺼졌다.


나중에 뉴스로 알았다.

전국의 보정 시스템이 서버 문제로 동시에 멈췄다고.

복구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슬롯 전체가 한순간에 맨얼굴이 되었다. 눈앞에는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몇 년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처음 봤다.

필터가 벗겨진 자리에 눈가 잔주름이 잡혀 있었다.

한쪽 눈썹이 조금 짙었고 콧등에 옅은 흉터가 있었고 웃을 때 한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매끄럽던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얼굴이 이상하게 더 그녀 같았다.


오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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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 앞의 인간이 무엇으로 남는지 묻습니다. 증명되지 않은 인간이 무엇으로 남는지 묻습니다. 답은 매듭짓지 않습니다. 미제(未濟), 풀리지 않은 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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