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우는 위험

마침내 그날이 온다면 기꺼이 피우길

by클로드

마침내 그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위험 / 엘리자베스 아펠






안정을 무척이나 지향하며 살고 있다. 안정을 중요시하기도 하지만 겁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들의 도전을 보면 그 마음에 몹시도 감탄하곤 한다.


퇴사를 이분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지만 누군가의 퇴사 소식을 들을 때면 나는 안정의 울타리 안에서 물끄러미 그 너머를 바라본다.


이직을 하는 동료를 보며 다른 회사에서 다시 새롭게 출발한다는 건 어떤 걸까, 경험해보지 못한 곳으로 건너가는 위험을 감수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한다. 다른 꿈을 찾아 떠나는 동료를 보며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이면 안정을 내려놓고 뛰어들 수 있을까 부러워한다. 다른 나라로 떠나는 동료를 보며 차원이 다른 용기에 그저 놀라며 감탄한다.


그러면서 나를 그곳에 대입해 본다. 나라면 할 수 있을까? 선뜻 움직일 수 있을까? 새로이 도달한 그곳에서 후회하게 되진 않을까? 무엇 하나에도 명쾌한 예스를 외치지 못한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내게도 올까? 온다면 나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까? 지금이 꽃을 피우려 움직여야 하는 때라고 말이다.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은 꽃을 피우기 위한 것이라고. 그걸 알아볼 수 있을까. 알아본다면 기꺼이 열고 나올 수는 있을까?


"새로운 곳에서 도전해보고 싶어서 간다."

"이곳에 계속 있는 것도 좋지만, 안주하는 느낌이 들어서 간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변화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간다."


그들은 이런 비슷한 말을 남겼던 것 같다. 있던 곳이 지독히 싫어서 간 것이 아니다. 도망치듯이 간 것이 아니다. 마음의 북소리를 따라서 간 것이다. 북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고,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느 날 내 마음에도 둥둥둥 북소리가 울린다면 나는 그 방향을 바라볼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지레 겁먹다가 말지도 모르겠다. 꽃을 피우는 위험은 어쨌거나 위험한 일이라고.


하지만 무척 오랜만에 본 이 시가 여전히 내 마음을 붙잡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 꽃 피우는 위험과 봉오리 속에 숨어있는 고통의 무게를 저울질해야 하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 그때 이 시를 떠올리게 되길 바란다. 이 시가 무척 필요할 것 같다.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은 꽃을 피우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계속 갇혀있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지금이 북소리를 따라갈 때라고. 그렇게 이 시가 말해주면 좋겠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위험 / 엘리자베스 아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