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하지 않는 법을
당신, 갑오징어는 1초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생김새를 바꿀 수 있다. 홀로그램 호랑이처럼 줄무늬를 띨 수도 있고 모래로 된 진흙땅처럼 얼룩덜룩해질 수도 있다. ... 이렇게 변신하는 능력 덕분에 당신은 상어, 바다표범, 물고기, 심지어 큰 벌레 같은 포식자를 피한다. 하지만 일단 위험이 지나가자 당신은 이 변신력을 탈출 이외의 일에도 쓰고자 간직하고 싶을 수도 있다. 도망치지 않는 순간에 당신은 무엇이 될 것인가?
-갑오징어처럼 변신하기-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 - 열 가지 바다 생물로 본 삶> / 사브리나 임블러
바닷속 변신의 귀재 갑오징어. 색깔은 물론 표면의 질감마저 주변 환경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한 그의 변신 능력은 텍스트로 읽기만 해도 가히 놀랍다. 그런데 저자는 묻는다. 이 변신력을 탈출 이외의 일에도 쓰고 싶지 않겠냐고. 도망치지 않는 순간에 무엇이 되겠냐고 묻는다.
집 문밖을 나서는 순간 나도 수시로 변신을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적당한 인사를 건네는 예의 바르지만 오버하지 않는 이웃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몸에 긴장이 한 꺼풀 입혀진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 표정과 눈빛까지 슬롯성을 띤다. 내 일을 잘 해내는 구성원이 되려고, 옆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동료가 되려고. 어쩌면 흠 잡히지 않을 누군가가 되려고.
집에 돌아온다고 나의 변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이와 마주하며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 띄워 밝은 엄마가 된다. 재미있었냐고, 별일 없었냐고 명랑하고도 조심스레 살피며 묻는다. 정말 궁금해서 물을 때도 있지만,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엄마로서 놓치는 게 생길까 봐 물을 때도 솔직히 많다.
남편에게는 한결 풀어진 모습일까? 나의 모든 화와 툴툴거림을 가장 잘 받아주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가릴 건 가려서 표현한다. 가족에 대한 것일수록 더더욱.
아, 나는 정말 수시로 변신하며 살고 있구나. 상황, 장소, 사람에 맞게 나의 색깔과 질감을 자꾸자꾸 변화시키는구나. 나를 감추기 위한 위장술은 아니겠다만, 마주한 사람에 맞는 나의 면을 내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은 슬롯적 동물이니까. 슬롯에서도 집에서도 나 이외의 타인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관계라는 게 생기는 거니까.
철저히 혼자 있을 때의 갑오징어는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 역시 갑오징어가 택한 모습일까? 가장 편안한 상태일까?
지금 혼자 방에 앉아 글을 쓰는 나를 돌아본다. 슬롯적일 필요가 전혀 없는 시간. 팔다리가 풀어진 자세와 입꼬리가 힘을 빼서 내려간 표정으로. 글을 쓰는 일 외에는 무엇도 의식하지 않는 완전한 몰입의 상태. 눈치도 배려도 의무도 필요 없다. (앗, 이 문장을 쓰는 도중에 남편과 아이가 방에 들이닥쳤다. 나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띠고, 목소리에 힘을 싣고서 그들에게 내가 무얼 하는지 열심히 설명한다.)
이 바카라을 읽으며 갑오징어에게서 삶을 배우는 기분이다. 혼자 있을 때의 갑오징어를 상상해 본다. 그 모습을 나에게 투영한다. 주변을 닮으려는 노력을 스르륵 벗어버리고 무언가 되려는 노력 또한 하지 않는 상태를 떠올린다. 힘을 빼야 물 위에 뜬다는 말도 떠올려본다. 그때의 나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다. 변신하지 않은 본연의 모습이 어떤지 나를 관찰한다.
바카라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그때가 나는 위장술에서 가장 멀어진 상태인 것 같다. 눈앞의 텍스트에 몰입하는 그때 말이다. 잠시나마 주변을 잊고 텍스트 속 세상에 풍덩 빠져버린 지금과 같은 때.
그렇다면 결론은 무척 쉬워진다. 나를 만나고 싶을 때 바카라을 읽으면 된다. 방해받지 않는 내가 되고 싶을 때 글을 쓰면 된다. 잠시 주변을 꺼두고 힘을 뺀 편안한 내가 되는 시간. 이토록 손에 쥘 수 있는 시간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문득 갑오징어에게도 그런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해의 모래, 흥미로운 산호, 어둡고 고요한 물의 압력. 그에겐 이러한 것들이 바카라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