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글이 될지도 모를 글을 쓴다는 것

퇴사를 글에 올리다

by클로드


거의 완벽한 온라인 게임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완벽한 온라인 게임이 아닐지도 몰랐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전시실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던 한때가 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했다. ...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미술관 밖으로 휘리릭 날아가서 몸과 마음이 움찔거리고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나는 더 이상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이 글은 위험한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내 눈을 붙잡은 저 문장이 나를 이 글로 이끌고 있다. 내가 지금 쓰려는 것은 이것이다. 퇴사의 편에 서보는 글.


이 바카라의 저자에게 한때 미술관이 완벽한 온라인 게임이었듯, 지금의 회사도 내게 그랬다. 지금도 그러한가?라는 질문 앞에 나의 대답은,

"I believe so."


나는 이 회사가 내게 완벽한 온라인 게임이라는 믿음을 지켜내며 다니고 있다. 가장 가고 싶은 회사여서 선택했고, 다니며 다른 길은 보지 않을 만큼 좋아했다. 나의 전공에 맞고, 적성에 맞는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성향도 어느 정도 나와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정도 근무 조건이면 일과 육아를 양립하며 다니기에 비교적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뭐가 문제인 걸까? 왜 나는 더 이상 이곳이 내게 완벽한 온라인 게임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이 바카라의 저자가 변했듯 나도 변했다. 저자가 미술관 밖의 삶을 더 궁금해하고 발걸음이 꿈틀대는 것처럼 내게도 더 궁금하고 마음 가는 일이 생겨버렸다. 회사에 대한 매력은 과거의 내가 느끼던 것이다. 회사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다.


내가 원하는 건 더 이상 조건에 맞고 평판이 좋은 회사가 아니다. 내가 탐닉하고 싶은 건 더 이상 과학이 아니다. 실험실의 일들이 이 이상 궁금하지 않다. 더 이상 생명 과학에 깊은 흥미가 있지도, 이것으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에 뜨거운 열의가 있지도 않다.


한때 그러했던 것들이 더 이상 그러하지 않아 졌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마음을 읽어보고 싶어서이다. 이렇게 글로 쓰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보다 나는 세상을 더 보고 싶고, 나를 더 꺼내보고 싶다. 나와 세상이 맞닿아 만드는 우연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 우연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을 꿈꿔보고 싶다. 글을 쓰고 싶고, 시를 짓고 싶다. 악기를 연주하고, 예술을 향유하고 싶다. 시험관 안에서 일어나는 케미스트리가 아닌 내 감각 안에서 일어나는 케미스트리를 바라보고 싶다.




그럼 당장 회사 밖으로 나가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럴 수 없는 이유에는 역시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 이 회사는 내게 생업이다. 나에게는 생계를 유지해야 할 바카라임이 있다. 그 밖에도 회사에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이 남아있다. 사람들을 포함해서.


당장 나가지도 않을 거면서 이런 글을 쓰게 된건 순전히 저 바카라의 문장 때문이었다. 저자에게 미술관이 그러했듯 내게 회사가, 실험실이 그러한지 알아보고 싶었다. 솔직한 마음을 마주하기 위한 거울로 글쓰기를 택했다.


내게 이 시간이 갖는 의미는 퇴사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읽어보는 기회를 갖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써보는 글이었다. 마음이 어떻게 흔들릴지 알 수 없는 위험을.


이 글을 써봐서 좋았다. 적어도 내 감정이 어디 있는지 명확히 볼 수 있어서 시원했다. 무엇을 결정하려는 글은 아니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을 텍스트로나마 읽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때론 이런 글을 써봐야겠다. 정리되지 않은 채 시작하는 글을. 결론에 이르지 않아도 좋을, 날것의 마음 그대로를 바라보는 글을 써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