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첫 골든위크, 그리고 지진

by공학자C

2026년 5월 2일 토요일, 맑음


[골든위크가 시작되다]


골든위크, 일본의 긴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다. 어제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아침식사를 식당에서 한 후, 숙취로 인해 다시 잠들었다. 나의 실질적인 하루의 시작은 오전 11시였다. 씻고 나서 밀크티를 가득 따른 컵을 바카라상에 올려두고 숙제를 했다.


그러던 중 몇몇 단어와 표현이 나의 궁금증을 강하게 자극해, 그 언어의 뿌리와 슬롯적 맥락을 한일 비교해 보았다. 그렇게 5시간 연속으로 자리에 앉아 공부와 연구를 병행하다가, 지금은 잠시 휴식하며 이 글을 짧게 남긴다.


오늘은 날씨가 꽤 화창하고 좋았지만, 계속 방에서 숙제 및 공부, 개인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1시간 반 정도 더 집중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가야겠다. 내일부터는 식당 직원분들도 4일간 연휴라 식당 운영이 없다. 그래서 근처 라이프(ライフ) 마트에 가서 먹을 것을 사 와야 한다. 참고로 현재 시각은 오후 4시를 조금 넘었다.


부산에서의 7년도 그랬지만, 지금 일본에서도 조용히 방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은 지적, 정신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다만, 내가 일본에 온 두 가지 큰 목적 중 하나를 이루기에는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교토에 와서 첫 지진을 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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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무단 사용 금지: 교토에서 처음 받은 지진 대피 안내 문자와 NHK간사이 방송]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기숙사 1층의 식당으로 내려가려는 찰나였다. 내 두 개의 휴대폰(한국 SKT 스마트폰, 일본 라쿠텐모바일 스마트폰)에서 긴급 알람이 울렸다. 일본어로 알림이 도착했기에 그 알림 문자를 보자마자 “이게 뭐야?”라고 외치는 그때, 기숙사 건물 전체가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약 2초, 기숙사 건물을 지진파가 통과해 갔다. 알림 문자를 확인하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지진이 발생했습니다”라는 한글이 적혀 있었다.


잠깐 놀란 마음이 있었으나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본이 원래 지진이 잦다는 것을 알고 오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육군에서 직업군인으로 장교 생활을 하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적이 두 차례나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초 양평-가평 일대에서 무장탈영병 검거 작전에 5분대기 소대장으로서 투입된 적이 있다. 실탄을 탄창에 삽입하고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혹시나 모를 교전에 대비하여 상·하 세트로 방탄복을 입었다. 국방부 차원에서 하달된 명령에는 조우했을 때 불응하면 즉각 사살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 나이 겨우 만 24세이던 때였다.


2010년 말 겨울, 연평도 포격전이 발발했을 무렵에는 2차 포대장(실제로는 1차 포대장 임기 이후 연장근무)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실제 국지전(진돗개 발령)으로 확전되어 해병대의 화력이 부족해지자, 육군에서 K9 자주포와 미사일이 증강되었다.


그때 나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명령으로 갑자기 차출되어 호루라기로 차량을 다 덮어 암실이 된 자리에 앉아 연평도로 향했다. 인천항에 도착했고, 내 부대의 장비들은 평택항에 집결해 연평도로 입도했다. 약 1개월 정도 동굴에 진지를 정하고 작전을 수행했는데, “정말 여기서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매분 매초 했었다.

아마 나는 이러한 일반적이지 않은 삶의 경험이 있는 탓에 죽음에 대해서 그다지 두렵거나 하지는 않다. 두렵지 않다기보다 무덤덤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민간인이 된 후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으나, 내 노력만큼 슬롯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정규직 취업에서도 늘 고배를 마시던 탓에(더 정확하게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탓에) 꽤 구체적으로 자살을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입문》을 수년 만에 다시 꺼내어 읽었다. 그리고 아직 뇌리에 박힌 문구가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내용은 이러했다.

“지식은 권력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터무니없는 말이다. 실제로 지식은 하나도 없으면서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휘두르고, 어떤 이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권력이 전혀 없어 생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세상은 비합리적이다.”


중세 시대 수도사들에 대한 글도 당시 우연하게 접했다.

“일반적인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본능이다. 수도사들은 자신의 지식과 생각 등을 저술하고 수도원에서 후세대에 전수하면서 생물학적 유전자는 남기지 않았지만 무형의 방식으로 그들의 DNA를 남겼다.”

이 글에 오랫동안 시선이 사로잡혔다. 그때부터 내 전공 분야와 상관없이 슬롯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연구하여 학술 논문(경제, 경영, 정바카라 분야)을 쓰고, 단행본을 매년 1~2권씩 써 내려갔다. 내가 언제 죽어도 아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중세의 수도사처럼 행동하려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못했으나 지식의 측면에서는 많은 것을 남겼다. 그러한 탓인지 언젠가부터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고,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그냥 내 삶의 일부이자 마지막에 존재하는 이벤트 정도로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의 지진도 그래서 무덤덤했던 것 같다. 식당에 내려가는데 관리인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놀라고 걱정된 표정으로 물었다. 교토는 다른 일본 지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진이 적게 일어나는 지역이라는 말은 들었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에게도 지진은 결코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는 자연재해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주머니의 행동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일본어를 아직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있었다. ‘지진(地震, じしん)’ 내가 따로 공부한 단어는 아니지만 한자음을 그대로 사용하는 단어라 한국어 발음과 거의 같았다.


“じしん(지신)〇〇〇〇〇〇〇〇, 大丈夫(다이죠부/だいじょうぶ, 괜찮습니까)?” 중간의 말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감각적으로 “지진 느꼈나요? 괜찮은가요?”라고 물어보는 것이라 알아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신, 춋또. 아나타모 다이죠부데스카(じしん, ちょっと。あなたも大丈夫ですか?/ 지진, 조금이요. 당신도 괜찮나요?)”라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주머니도 괜찮다며 답해주었다.


식당에 가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간사이 지역(특히 교토) 방송으로 지진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고, 약 진도 5의 규모였다고 한다. 계속 상황을 보고하며 다행히 해일(쓰나미) 조짐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칠 때쯤이 되니 사람들도 놀란 마음을 좀 추스르는 것 같았다. 기숙사에는 외국인들이 많다. 아마 지진을 처음 경험한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식당에서는 초반에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다들 일본어를 알아듣든 그렇지 않든 생존 본능이 켜진 탓인지 모두 식사를 하면서 일본어 뉴스 방송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식당 직원들에게 늘 그러했듯이 식사를 잘 먹었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식당 직원들도 4일간의 골든위크 연휴를 보내니 연휴를 잘 보내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주머니 한 분은 잘 못알아 들었던지 나에게 뭐라고 한 것이냐모 물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느낌이 그러했다. 그래서 나는 또박또박 다시 말씀 드렸다. “타노시이 골든위크오 오스고시 쿠다사이(楽しいゴールデンウィークをお過ごしください。즐거운 골든위크 연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제서야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었고, 나에게도 행복한 연휴 보내라고 해주었다.


식당을 나와 관리인 부부께도 같은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부부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보고 어디 안 가냐고 물었다. 정확히 알아들은 말은 아니지만, 표정과 몸짓, 내가 아는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해 말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기숙사에 머물 것이라고 대답했다. 관리인 부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뭐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건 알아듣지는 못했다. 아마 맥락상 “잘 지내라”는 뜻 같았다.


아저씨는 갑자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게 뭐라고 말을 건넸는데, 느낌적으로 “일본어를 이제 조금씩 하시네요. 많이 늘었습니다”라고 칭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리카가토우 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고맙습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