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일 목요일, 맑음
일본에 도착한 지 5일 차가 되어서야 늘 오가며 보던 니조성(二条城)을 관람했다. 이곳은 1603년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에 머물 때의 거처로 건립한 성이다. 단순히 요새의 기능을 넘어, 교토의 천황에게 쇼군의 강력한 권위를 과시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컸다. 성의 중심인 니노마루 어전(二の丸御殿)은 도쿠가와 가문의 영광을 상징하며, 훗날 15대 쇼군이 대정봉환(大政奉還)을 통해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납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니조성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이유는 이 어전이 에도 시대 초기 무가 저택 양식인 ‘쇼인즈쿠리(書院造り)’의 정수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6개 동의 건물이 기러기가 줄을 지어 날아가는 듯한 ‘간코즈쿠리(雁行造り)’ 배치로 연결된 건축 미학은 모모야마 양식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각 방의 문과 벽면은 당시 최고의 화가 집단인 카노파(狩野派)의 금박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외빈 대기실에는 위엄 있는 호랑이를, 안쪽 방에는 학이나 소나무를 배치하는 등 내방객의 신분에 따라 시각적 메시지를 차별화하여 무사 정권의 압도적인 위계질서를 체감하게 했다.
한국인으로서 이곳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정권을 잡고 조선과 국교를 재개하며 통신사를 영접하는 등 평화적 관계를 모색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구축한 막강한 무사 정권의 기틀이 훗날 동아시아 정세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화려한 어전의 금박 벽화가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건물 내부를 관람하면서 특이한 점은 걸을 때마다 복도 바닥에서 ‘쉬익, 쉬익’ 하는 맑은 휘파람 같은 금속성 마찰음이 들린다는 것이다. 내부 복도의 ‘우구이스바리(鴬張り, 휘파람새 마루)’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학술적 논쟁이 존재한다. 전통적으로는 침입자 감시용 방어 설계라는 설이 지배적이었으나, 근래 학계에서는 목재를 고정하는 철물과 못이 마모되어 발생하는 노후 현상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유사한 공법으로 복원된 건축물들이 완공 직후에는 소리가 나지 않다가, 시간이 흐르며 부품 간 유격이 생겨 소리가 발생하는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 이러한 실증적 데이터는 이 마루가 의도된 경보 장치였는지, 혹은 세월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이었는지에 대해 중립적이고 다각적인 고찰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관람료가 1,300엔으로 타 유적지에 비해 다소 비싼 점은 교토시가 직접 관리하며 수익금을 세입으로 관리하는 구조와 연관이 있다. 교토시는 문화재 보존을 위한 개발 제한으로 고정자산세 수입이 적고, 높은 학생 비중으로 인해 주민세 세입마저 부족한 ‘재정 위기 도시’라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 관람료는 문화재 유지비 조달이자 도시 경영을 위한 고육지바카라이라는 경제적 견해가 공존한다.
성 내부 혼마루 구역에 위치한 옛 왕족의 사택인 혼마루 어전(本丸御殿) 등 일부 시설은 별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여 외부만 관람했으나,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일본 특유의 왕족 건축물의 예술풍을 체감하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