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을 넘어, 나의 지형을 바라보는 시간
빗각(BitGak) 평면과 입체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다 보니, 발걸음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내 손에는 늘 지도 앱이 쥐어져 있다. 낯선 길을 나설 때면 습관처럼 지도를 켠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도는 평면이다.
이차원의 세계 안에서 길은 하나의 선으로 그어지고, 나는 그 선을 따라 움직인다. 여기서 얼마를 가서 좌회전, 다시 얼마를 가서 우회전, 그리고 직진. 그것이 전부다.
나는 그런 정직한 평면지도에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너무 차갑게 느껴질 뿐이다. 왜 정직함은 이토록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
길은 하나의 선으로 납작하게 눌리고,
그 위에는 목적지를 향한 방향만 남는다.
그 길을 걸었던 시간도, 머물렀던 마음도,
길 위에서 마주친 풍경도 모두 사라진 채.
어쩌면 이것은 이차원이라는 세계가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하루를 평면으로 들여다보면 하나의 일정표처럼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몇 시까지 일을 마치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처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산다. 다음 신호등, 다음 마감, 다음 약속, 다음 갈림길.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향해 현재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 걷고 있는 길의 주변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적게 보면 볼수록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면으로만 바라보면 오늘은 내일이라는 불확실성을 향해 뻗은 좁고 긴 통로처럼 보인다. 마치 정해진 방향을 따라 출구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지하도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위로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때때로 그렇게 오늘이라는 시간을 무심히 지나쳐 버린다.
그런데 지도를 삼차원으로 바꾸는 순간, 같은 길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저 앞에 낮게 솟은 언덕이 보이고, 길 아래로는 강물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흐른다. 건물 사이로 기울어진 햇빛이 스며들고, 멀리 있는 산과 가까이 선 가로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길은 더 이상 숫자와 방향의 나열이 아니다. 빛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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