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창작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의 발달은 이제 현대인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변화이자 현실이 되었다.
‘AGI 시대가 열렸다’는 소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예고가 있었음에도 정작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답을 준비해 왔느냐는 것이다.
교육계든 문화예술계든, 이 변화 앞에서 과연 얼마나 구체적인 답을 마련해 왔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 대원군 시대도 아닌데, 그저 빗장을 걸어 잠그고 ‘안 된다’라고만 외쳐서 버틸 수 있는 상황일까.
로봇이 매장에서 '잘' 팔리는 나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자, AI 분야라면 어떤 지표를 들이대도 압도적인 속도로 앞서 나가는 나라, 중국. 이미 이 나라에서는 집안일을 대신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매장에서 팔리고, 청소와 잡일을 ‘어느 정도’ 해내는 피지컬 로봇이 실제 가정에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은 약 1만 8000대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6만 2500대 안팎까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니트리(Unitree)와 애지봇(AgiBot) 같은 기업은 상하이에 잇달아 오프라인 체험 매장을 열었고, 이곳에서는 안내부터 매장 운영까지 로봇이 도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현재 20억~30억 달러 규모인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35년에는 20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고, 중국이 지난해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설치량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격 경쟁력도 상당해서, 중국산 로봇의 생산 단가는 서구 경쟁사의 절반 수준인 5만 달러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이 나라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근 이 나라에서는 훨씬 더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많은 나라 사람들이 마치 중국산 틱톡에 열광했던 것처럼, 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변화가 단순한 기술적 유행에 그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이유는, 이미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매일 체감할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숏드라마를 통째로 삼킨 AI
지금 중국의 영상 산업을 이끄는 것은 <오디세이> 같은 거대 자본의 영화가 아니다.
그 자리를 놀라운 속도로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소 의외의 존재, 바로 스마트폰 화면에 최적화된 1~3분짜리 초단편 연속극, 이른바 ‘숏드라마(미니드라마)’다. 중국에서 숏드라마는 이미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고, 최근 이 시장에 AI가 무서운 속도로 파고들고 있다.
중국네트워크시청각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6년 1분기에만 약 12만 8000편의 숏드라마가 새로 공개됐는데, 이 가운데 95%가 넘는 약 12만 2000편이 카메라 촬영이나 실제 배우의 연기 없이 AI로 전면 제작된 작품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완전히 AI로 만들어진 숏드라마의 비중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속도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숏폼 플랫폼 더우인(抖音)에서만 AI 숏드라마 신작이 22만 편 넘게 공개돼 누적 조회수 5000억 회를 기록했다는 보도도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AI 드라마는 우리에게 익숙한 정통 TV 드라마와는 다르다. 짧은 영상 수십, 수백 편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숏드라마가 대부분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크게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제작 현장의 언어로 바꿔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업계에 따르면 60부작 분량의 중급 실사 숏드라마를 만드는 데는 50만~60만 위안(약 1억~1억 3000만 원)이 드는 반면, AI 숏드라마는 20만 위안(약 4200만 원) 이하로도 제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촬영과 편집을 포함한 제작 주기도 평균 2~3개월이던 것이 1~2주 수준으로 짧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 여파로 ‘동양의 할리우드’라 불리는 저장성 헝뎬 촬영소에서는 실사 드라마 촬영 개시 건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75%가량 줄었고, 한때 하루 4~5개 팀이 동시에 촬영을 시작하던 현장 곳곳이 텅 비어 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드는 데 반드시 많은 사람과 거대한 제작비, 긴 촬영 기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창작’이라는 개념과 범위 역시 함께 바뀌고 있다.
배우를 섭외하고 촬영장을 마련하고 카메라를 설치해, 수많은 스태프가 장면을 찍고 편집하고 후반작업까지 거치는 전통적인 제작 방식 옆에 전혀 다른 길이 생겨나고 있다.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이야기를 장면으로, 장면을 영상으로 바꾸는 과정 하나하나에 AI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게임업체 쿤룬테크가 내놓은 AI 영상 제작 플랫폼 '스카이릴스(Skyreels)'는 자체 개발한 대본 전담 언어모델 '스카이스크립트(SkyScript)'로 대사와 줄거리, 스토리보드까지 자동으로 뽑아낸다.
다시 말해 지금 AI는 영상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만이 아니라, 극본과 시나리오를 쓰는 맨 처음 단계에서부터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변화의 속도다. 과거에는 콘텐츠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했기에, 창작자는 무엇을 만들 것인지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그러나 제작비와 제작 시간이 급격히 낮아지면 셈법이 완전히 달라진다.
성공할 법한 작품 하나를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드는 대신, 수십 편, 수백 편의 이야기를 빠르게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그 가운데 어떤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인기 숏드라마 플랫폼 훙궈(紅果)의 인기 순위 10위권 안에는 AI 제작 작품이 여섯 편이나 포함됐고, 그중 한 편은 1위까지 올랐다고 한다.
창작의 근본이 흔들리더니, 이제는 창작의 경제학 자체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창작’이라 불러온 것은 무엇이었나
바로 여기서, 우리가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창작’이라고 불러온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오랫동안 창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행위로 여겨졌다. 한 사람이 경험하고 상상하고 고민한 끝에, 그것을 문장이나 그림, 음악, 영상으로 표현해 내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의 이름을 작품과 함께 기억했고, 작품 뒤에 놓인 인간의 삶과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런데 AI는 그 경계 안으로 아주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소설의 줄거리를 짜고, 대사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영상까지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법과 제도가 아직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6년 현재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인간의 실질적인 창작적 기여 없이 AI가 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에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속 산업은 이미 그 원칙이 따라잡기 버거운 속도로 앞서 달려 나가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한 유명 여배우의 얼굴과 목소리가 본인 동의 없이 AI 숏드라마에 쓰이는 일이 벌어졌고, 소속사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창작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이제는 저작권을 넘어 초상권과 인격권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AI를 단순히 창작을 ‘도와주는 도구’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로 가고 있다. 인간이 아이디어를 던지고 AI가 결과물을 만드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 인간과 AI가 하나의 창작 과정 안에서 역할을 나누어 맡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경을 넘고 있다
이 변화가 중국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조짐도 뚜렷하다.
중국계 플랫폼 릴숏(ReelShort)은 2024년 한 해에만 해외 매출 4억 달러를 기록했고,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세로형 연속극을 차세대 포맷으로 보고 전용 스튜디오와 펀드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AI를 활용한 숏드라마 제작이 시작됐다.
중국 내의 시장 규모로 보면 마이크로드라마·숏드라마 시장은 2025년 이미 1000억 위안(약 15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됐고, 2026년에는 1200억 위안(약 165억 달러)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에 이미 이 시장이 중국 연간 영화 박스오피스 규모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나는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 거대한 변화의 아주 작은 전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AI가 만든 작품과 인간이 만든 작품을 구분할 수 있고, AI의 창작에는 어딘가 어색한 구석도 남아 있다. 하지만 기술은 그 간극을 무서운 속도로 좁혀가고 있다. 아니,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그 선을 넘어섰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AI는 새로운 창작 도구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던 ‘창작’이라는 개념 자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쓰나미가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가 인간처럼 창작할 수 있는가”가 아닐 것이다. 이미 AI와 함께 창작하는 시대는 열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창작자를 무엇이라 부를 것이며, 그 작품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아직 갖고 있지 않다.
참고 자료
중국네트워크시청각협회(中国网络视听协会) 2026년 1분기 통계 - 미디어피아, 초이스경제, 뉴스스페이스, PD저널 재인용
홍콩 명보 보도 - 헝뎬 스튜디오 공동화, 훙궈 플랫폼 순위, 배우 초상권 분쟁 (미주중앙일보 재인용)
오마이뉴스, “당신이 숏폼에서 본 드라마, AI가 어제 만들었다” - 릴숏 해외 매출, 시장 규모
SBS Biz, 더구루 -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시장 전망·가격 경쟁력
국내 저작권 관련 블로그(위키독스) — 2026년 기준 AI 창작물 저작권 논의 동향
SCMP, Yicai Global — 쿤룬테크 AI 영상 제작 플랫폼 '스카이릴스'의 대본 자동 생성 기능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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