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 나는 아직 실리콘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새 아파트의 현관 앞에 선다.
낮 동안 인테리어 기사들이 마지막 실리콘을 쏘고 떠난 자리.
사람은 아직 살지 않지만, 사람이 살 준비는 이미 끝난 공간이다.
형광등 하나가 아직 보호 필름을 벗지 못한 채 창백하게 켜져 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공간, 나는 그 텅 빈 완성을 청소하러 온다.
교수로 삼십여 년을 살았다.
그 세월 동안 강의실에서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채우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빈 공백에 지식을 채우고, 빈 논문에 각주를 채우고, 빈 시간표에 세미나를 채웠다.
그리고 채우는 일에는 명확한 방향이 있었다.
앞으로, 위로, 더 많이.
그런데 은퇴라는 사건은 이상하게도 이 방향을 통째로 지워버렸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더 이상 채워야 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제 편히 쉬시라"고 다정하게 말했지만, 그 다정한 위로는 마치 완공된 집의 실크 벽지처럼 아무 데도 걸리지 않고 그냥 미끄러져 내렸다.
평생을 서 있던 자리에서 문득 발밑이 사라진 사람처럼, 나는 그 친절한 말 앞에서 처음으로 지독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랬다. 한 순간 내 발밑이 허공으로 변했다.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만큼.
그때 나에게 정반대의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채우는 대신 지우는 일. 청소는 무언가를 더할 일이 없다. 오히려 처음의 상태로, 아무도 손대지 않은 날것의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다.
시멘트 가루를 쓸어내고, 유리창의 지문을 지우고, 바닥의 실리콘 부스러기를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닦아낸다. 나는 이 집을 더 화려하게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집이 원래 지니고 있던 침묵으로 돌려보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이것이 비참한 굴욕으로 다가올까 봐 내심 두려웠다.
한때 강단 위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손이, 이제는 아무도 없는 밤 누구도 보지 않는 방의 걸레를 쥐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첫날밤, 나는 고무장갑을 낀 채 창밖의 불 꺼진 도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너무나 조용한 그 순간, 아무도 없는 그 빈방에서 나는 뺨을 적시는 온기가 눈물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비참함이나 서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평생 동안 지쳐 있던 내 몸이 먼저 알아버린 어떤 안도감 때문이었는지도.
몇 주가 지나자 내 안에 다른 감정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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