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부터 시작하지?"의 정체

빈 캔버스와 자유의 현기증

byItz토퍼
빗각(BitGak) 09
빈 캔버스


e9c1e405-4eec-4166-b260-f752357554f6.pngby ChatGPTY


"뭐부터 시작하지?"

빈 캔버스 앞에 한 창작자가 멍하니 서 있다.


그의 눈빛에서 무얼 읽을 수 있을까.

아직 아무런 생각도 잡히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마음속으로 하나씩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일까.


캔버스가 비어 있다는 것,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 위에는 이미 무수한 그림들이 겹쳐 있다.


아직 그어지지 않은 모든 선과 아직 칠해지지 않은 모든 색이 서로 제 자리를 다투며 화면 아래에서 웅성거리고 있다.


창작자가 캔버스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오는 감정이다.

아무것도 없어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 동시에 가능해서 두려운 것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불안의 개념(Begrebet Angest, 1844)》에서 이 역설적인 상태를 두고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Frihedens Svimmelhed)"이라 정의했다.


마치 높은 절벽 끝에 서서 발아래에 펼쳐진 아득한 심연을 내려다보는 순간과 같다.


그 아찔한 심연에서 느끼는 현기증은 심연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그 아래로 뛰어내릴 수도, 혹은 뒤로 물러설 수도 있는 스스로의 선택 가능성, 즉 자신의 절대적인 자유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불안이란 구체적인 대상 앞에서 생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 무한한 가능성을 직시했을 때 마주하는 순수한 자유 그 자체다.


빈 캔버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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