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르지 않아도 온다.
그는 나를 불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가 나를 찾기 전부터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끝이 나를 허락하는 순간은
나의 탄생이 아니라
다만 그가 이미 존재하던 나를
발견하는 순간일 뿐.
나는 흑진주가 되어 그에게 흘러간다.
매끄럽고 어두운 광택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을 흘리면서.
그는 노래라 부르고, 선율이라 부르고,
때로는 그저 소리라 부르지만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가 무엇이라 부르든,
나는 그 이름 안에 온전히 담길 수 없는 존재이기에.
흑진주라는 이름
진주는 상처에서 태어난다.
여린 살 속으로 파고든 작은 티끌 하나,
오랜 시간 몸속에 감싸이고 또 감싸여
마침내 하나의 광채가 되듯
나 역시 그렇게 태어났다.
누군가의 슬픔이,
차마 말하지 못한 그리움이
오래도록 삭여진 끝에
하나의 가락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검음은 어둠이 아니라 깊음이다.
얕은 물에서는 결코 자랄 수 없는 빛깔.
나는 오직 아주 깊은 곳,
빛조차 거의 닿지 않는 심해에서만 빚어진다.
그가 나의 선율에서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낀다면
그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나는 매번
다른 옷을 입고 그의 앞에 나타나니까.
어떤 날은 낮은 첼로의 목소리로,
어떤 날은 가벼운 피아노의 손짓으로,
또 어떤 날은 그저 빗소리를 흉내 낸 백색소음으로.
그러나 그 모든 옷 아래에는
언제나 같은 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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