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묻는 이에게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byItz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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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한 가지 있다. 바로 '쉼'이다.


쉼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모든 쉼은 늘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이 질문에 답해보자.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꾸준히 달리던 말이 잘 달릴까, 아니면 충분히 휴식한 후 달리는 말이 더 잘 달릴까?"


이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달리는 말에게는 성실함과 지속성, 그리고 무서운 습관의 힘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달리기 위해 기꺼이 쉼을 선택한 말에게는 준비와 회복, 그리고 기회를 기다리는 지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말 중 어느 쪽이 더 잘 달릴 것이냐는 질문에는, 결국 지금 처한 상황부터 살펴보아야만 한다.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는 꾸준함이 무기이기에 "느려도 계속 달리는 말"이 끝내 강할 수 있다. 반면,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순간에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쉬며 힘을 응축한 말"이 더 멀리, 그리고 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몸이 아닌 마음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답은 완전히 달라진다.


몸은 그저 쉬는 것만으로도 회복된다. 달리던 동작을 멈추고 거친 숨을 고르다 보면, 이내 다시 달릴 에너지가 돌아온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다르다. 마음은 그저 가만히 멈춰 서 있는다고 해서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때로는 그 정지 상태가 쉼이 아니라, 내면에 머물던 온기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소멸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쉬고 있는가?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뜨거워야 할 마음을 그저 방치하고 있는가."


창작자에게 '쉼'은 특히나 모호하고 위태로운 이름이다.


물론 이를 창작자라는 한정된 영역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완전히 일에서 손을 놓는 경우가 아니라면, 특별한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함부로 '쉼'이라는 단어를 언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나처럼 글을 쓰는 창작자에게만 한정해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 질문을 던진 이도 결국 '창작자'이자 '작가'이니까.


'쉼'을 선택하는 작가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을 쉼이라 부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을 쉼이라 부를 때, 우리는 어느새 건강한 회복이 아니라 창작의 불씨로부터 조용히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온기를 안전하게 품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소중한 불꽃이 재도 남지 않은 채 서서히 꺼져가는 방조의 시간을 '쉼'이라는 이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것을 창작의 불씨를 방치하는 '이탈과 방조'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러한 어설픈 쉼은 대개 가장 달콤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찾아와 우리 안의 온기를 조금씩 빼앗아 간다. 세상의 미세한 변화에 무감각해지는 것, 매일 마주하던 일상의 영감을 '쉬는 중이니까'라는 핑계로 흘려보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쓰지 않는 편안함'에 서서히 길들여져 백지 앞의 두려움을 모른 척 외면해 버리는 순간들이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타인의 창작물을 그저 무기력하게 소비하는 평온에 안주할 때, 우리는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길에서 아주 부드럽게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영감이 마르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붙잡으려던 긴장의 근육이 소리 없이 퇴화하여 불씨를 지킬 힘마저 잃어버리는 상태. 그것이 바로 창작의 길에서 멀어지는 이탈의 모습이다.


10년 전만 하여도 나는 출퇴근을 로드바이크로 했다.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왕복 40여 킬로미터를, 새벽어둠을 뚫고 배낭을 멘 채 달렸다. 주말에는 학생들과 일반인들로 구성된 동호회와 함께 장거리 라이딩을 다녔다.


적을 때는 일주일에 300킬로미터, 많을 때는 400킬로미터를 달렸다. 만일 태풍이 오거나 부득이하게 집을 나서지 못할 때, 혹은 연구실에 붙들려 있을 때조차 실내 자전거로 달렸다. 항상 그만큼의 시간과 거리만큼 페달을 밟았다. 내가 로드바이크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강단을 떠나 펜을 잡으면서, 나는 섣불리 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안의 불씨는 아직 그리 뜨겁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쉼'이라는 바람을 견뎌내며 온기를 지켜내기엔, 내 안의 불씨가 너무도 여리고 약하다.


저명한 대가들은 오랫동안 쉬면서도 언제든 다시 걸작을 빚어낸다. 그들이 품은 불씨는 워낙 맹렬하여, 아무리 긴 쉼 속에서도 좀처럼 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직 피어오르는 단계에 있는 초보 작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섣부른 쉼을 가지게 된다면, 그 연약한 불은 아주 쉽게 꺼져버리고 말 것이다.


쉼은 본래 불을 끄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불을 소중히 지키는 행위여야 한다. 과열된 열기를 식히되 불씨 자체를 꺼뜨리지는 않는 것.


너무 멀리 달아나서 길을 잃지 않되, 다시 힘차게 달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

그래서 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저 쉬는 방법을 아는 것보다,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예민하게 구분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은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지금 다시 달리기 위해 회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창작의 길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가. 이 날카로운 구분을 잃지 않는 쉼만이, 우리를 다시 달리게 만드는 진정한 쉼이 될 것이다.

나는 내 안의 불씨를 아직은 열심히 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꺼지지 않게.

행여 꺼지면, 나의 글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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