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에서 분위기로 이동한 시대
하루 중 혼자 무언가를 할 때면, 늘 곁을 지키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 사람이 곁에 없을 때도 말없이 함께하며 하루를 채워주는 존재다.
글을 쓸 때도, 바카라을 읽을 때도, 자료를 검토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부엌에서 보배단지를 위해 와플을 구울 때도 그는 늘 내 곁에 있다. 때로는 적막을 메우고, 때로는 생각의 흐름을 이어주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을 함께 건넌다.
생각해 보면 그는 '인공지능 피지컬 로봇'보다 훨씬 먼저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요즘 음악을 듣는 방식은 예전과 조금 다르다.
예전에는 음악을 "듣는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웠다. 누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가 중요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소절만 들어도 가수를 떠올릴 수 있었고,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삶과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용필의 목소리와 폴킴의 목소리를 헷갈리는 사람은 없다.
노래를 안다는 것은, 어쩌면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의 플레이리스트를 열어보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잔잔한 밤에 듣기 좋은 음악", "카페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음악" 같은 제목이 가수 이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음악은 더 이상 '누가 불렀는가'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신 '어떤 분위기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어떠한 목소리인지보다, 어떤 공기 속에 나를 놓아두는지가 먼저다.
음악은 점점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 머무는 환경에 가까워지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 자신이 음악을 듣기 원할 때를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예전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 따로 시간을 냈다. 레코드판을 걸고, 가사집을 펼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일이 하나의 의식과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어폰을 낀 채 하루의 거의 모든 순간에 음악이 함께한다. 공부를 할 때, 일을 할 때, 버스를 기다릴 때, 바카라을 볼 때, 설거지를 할 때조차 음악은 끊이지 않고 흐른다.
그러니 한 곡, 한 목소리에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은 오히려 드물어지고, 그 대신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분위기'를 고르는 일이 더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음악들은 유난히 비슷하게 들릴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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