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 빗각(BitGak) 19: 선택과 조건
아버지는 매일 아침, 면도를 하셨다.
그러지 않으면 구레나룻과 수염이 금세 자라 얼굴을 덮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은근히 기대했다. 솔직히 나도 수염을 기르면 정말 멋있어 보일 것 같았다.
그런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에게도 거뭇거뭇하게 구레나룻과 수염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 번쯤 수염을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좀처럼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마침내 한 번, 수염을 길러볼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멋있음을 기대하고 기르기를 하루, 이틀. 면도를 하지 않고 그냥 주변만 다듬기를 한 달.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는 그냥 딱 모판 수준까지 자라더니 거기까지, 더 자라질 않는다. 그것도 들쑥날쑥 이었다. 이건 잡초밭 수준이다.
결국 포기. 자기 합리화는,
“아직 나이가 덜 찼나 보군.”
어릴 적, 역사바카라을 읽다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왜 옛날 사람들은 수염을 길렀을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역사바카라 속 인물들의 초상화를 보고, 심지어 사극을 봐도 왕도, 신하도, 장군도 긴 수염을 달고 있다. 물론 내시는 예외더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길, ‘그 시대에는 수염이 멋과 권위의 상징이었나?’. 남자라는 표현이거니 하고 생각했으며, 어떤 문화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씩 커가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수염을 기른 것이 아니라, 그저 깎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는 면도를 선택한다. 면도기를 살 수도 있고, 전기면도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레이저 제모를 받을 수도 있다. 결국 수염은 취향의 영역으로 남았다. 하지만 면도날조차 귀하고 정교한 도구가 아니었던 시대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에게 수염은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순간 거울 속에서 하나의 성찰이 튀어나온다.
우리는 사람들의 선택을 바라볼 때, 정작 그 선택을 만들어낸 조건은 놓치곤 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선택 자체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선택을 이끈 조건이 무엇이며 어떻게 선택을 규정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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