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과 핑계 사이에서 억눌린 성장
프롤로그: ‘명분’이라는 이름의 핑계, 그리고 관계의 양면성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명분’이라는 이름의 핑계를 만들어낸다. 겉으로는 타인을 위한 결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불안과 욕망, 바카라임을 피하려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관계에서도 이러한 명분은 쉽게 등장한다.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기도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관계는 늘 한 가지 얼굴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따뜻한 위로가 되다가도 가장 깊은 상처가 되며, 이해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오해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래서 명분은 때로 배려가 되지만, 때로는 진심을 숨기기 위한 가장 그럴듯한 가면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럴듯한 명분과 변명을 앞세우는 이 ‘핑계’의 메커니즘이 비단 사적인 영역이나 개인의 마음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슬롯생활, 특히 온라인 게임 내 인간관계 속에서는 이것이 훨씬 더 빈번하고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슬롯생활 가운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항상 말하는 대상은 대부분 ‘상사’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반대되는 경우도 충분히 존재한다.
상사들 역시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업무 경험 부족으로 인해 일을 지체시키거나 심지어 망치는 직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관계성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단면이 아닌 양면성을 띠기 마련이다. 오늘은 상사라는 위치 혹은 경력자들이 겪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급자들의 모습에 대해 한 가지 주제를 선택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바로 나 자신도 피해 갈 수 없는 ‘핑계’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자아: 무의식적인 합리화의 보호막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다들 저마다의 이유는 댈 수 있지만 대부분은 변명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핑계가 습관이 된 이들을 마냥 게으르거나 무바카라임한 사람으로 보며 비방하거나 지적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오히려 심리학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들의 반복적인 변명은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오래된 방어기제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중에서도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결점이나 실패를 그럴듯한 이성적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려는 ‘합리화(Rationalization)’의 전형적인 형태다. 자아가 상처받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치는 겹겹의 보호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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