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엄마 생일날이니까, 우리 점심을 명동교자에서 먹을래?"
"응 언니, 우리 옛날 생각나겠다! 엄마랑 명동에 갔던 때 말야.."
엄마는 나와 동생과 함께 주말이면 명동 나들이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아빠는 일 년에 10개월은 해외출장이라 주말이면 늘 우리 셋은 서울 명동 나들이를 즐기곤 했다.
그중에서 엄마가 좋아하던 식당은 명동교자와 한일관이었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인데도 나는 아직도 엄마가 우리의 손을 잡고 명동 한복판을 걸어 다니던 기억이 눈앞에 선하다. 그 당시는 서울에 회사가 있던 엄마는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가서 근무를 했었고, 나중에는 당직으로 돌아가며 근무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주말에도 회사에 간다고 싫어할 법도 했지만, 동생과 나는 엄마가 당직인 날을 제일 좋아했다. 그날은 엄마가 일을 할 동안 우리도 엄마의 회사의 한 바카라상에 자리를 잡고 바카라을 읽거나 학교 숙제를 하다가, 전자 타자기 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레트로 감성이라 오래전 감성을 디자인으로 하는 카페나 서점에서 볼 법한 타자기가 그 당시에는 회사 업무용으로 있었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이 실감 나는 것 같다.
나는 고장이라도 날 세라 타자기 키를 하나씩 조심스레 누르면서 콕콕 하나하나 치는 것에 집중했고, 혹여 동생의 장난으로 한 글자라도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쳐야 하니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타자기 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엄마의 당직 시간이 끝나면 비로소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명동이나 종로, 을지로로 향했다.
엄마가 좋아했던 명동교자를 먹으면서 명동을 구경하다가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하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을지로에서 영화를 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지금은 이미 사라진 극장이지만, 그 근처를 지나가면 늘 그 시절의 추억이 영화처럼 눈앞에 지나가곤 한다.
"어? 원래 명동교자 면이 이랬었나?"
"우리 동네에 있는 명동칼국수가 더 우리 추억의 맛인데?"
엄마의 생일을 핑계로 만난 우리 둘은 예전 추억을 되살려 엄마가 좋아했던 명동교자에서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 추억의 명동교자는 이미 본점, 1호점 등으로 바뀌어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맛도 바뀌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탱글탱글한 면발이었고 국물 역시 진국 같았는데, 아주 오랜만에 다시 찾은 명동교자는 내 기준에서는 참 실망스러웠다.
내색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동생도 같은 생각이라며 말을 하기에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그냥 눈빛 교환을 하고 그 자리를 나섰다.
엄마의 생일에,
엄마를 기억하고 싶어서,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점을 찾아서 먹으러 왔는데,
그 맛은 이미 오래전에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곳에 더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근처 카페로 이동해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여느 때 그랬던 것처럼 헤어졌다.
"언니, 조심해서 가, 더위 조심하구!"
"응, 너도 건강 조심하고, 또 만나~"
한여름 폭염이 절정이던 날.
엄마 생각에 번개처럼 만나서 찾아간 추억의 장소에서,
우리는 결국 그 시절의 맛을 찾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음식맛이 바뀔 수 있고, 거리 역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꼬꼬마였던 우리도 예전의 우리와는 많이 바뀌어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맛보고 싶었던 것은 그저, 칼국수의 맛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던 토요일 오후와,
엄마 손을 잡고 걷던 명동 거리와,
우리 셋이 마주 앉아 칼국수를 먹던 그 시간.
그 맛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시절의 맛은 찾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동생을 만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함께했던 추억을 나와 똑같이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그때 그랬었지”라고 말하면 바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그렇게 엄마의 생일에
엄마를 기억했고,
오늘은 오늘대로
또 하나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