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우리 데이트는 도서관으로 가자!"
첫째의 초등 마지막 여름방학의 마지막 날, 나는 회사에 오후 반차를 내었다.
아이들과 방학이면 해오던 데이트를 위해서였다.
제일 좋아하는 마라탕을 점심으로 먹고, 이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설빙의 빙수도 먹었다.
마라탕을 먹을 때에는 아이들이 나의 흰 남방에 마라 국물을 튀겨서 점점이 얼룩이 졌지만, 일단 오늘은 참기로 했다.
남편과 이번 연휴가 끝나는 날까지 화내지 않고 짜증 내지 않기로 미션을 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라탕에서 벌컥 화가 났지만, 그래도 참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번 침을 꿀꺽 삼키니 화도 같이 삼켜지는 것 같았다.
'그래, 요즘 얼룩제거제도 잘 나오는데, 빨래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설빙으로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겼다.
키오스크 앞에서 옥신각신하는 남매를 보면서, 맛있는 빙수를 서로 먹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 기다려 주었다.
이전에는 키오스크 앞에서 서로 누르겠다고 밀치는 모습만 봐도 짜증부터 올라왔을 터였는데, 일단 참기 시작하니 그다지 화낼 일도 짜증 낼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모두가 선택한 멜론빙수는 보기만 해도 절로 탄성이 나오는 비주얼이었다.
아이들과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데, 아직 장난기 많은 둘째가 또 슬며시 누나에게 싸움을 거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이거 벌꿀 다 먹을 거야!"
"엄마, 이거 나눠줘! 초콩이가 자꾸 자기가 다 먹는데!"
여기까지는 기분 좋게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잠시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사이, 빙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그 빙수를 서로 먹겠노라며 숟가락 위에 있는 것을 뺏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야! 이놈들아!'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올 뻔했다.
'후, 아! 오늘 위기가 많지만, 첫날을 잘 넘겨야 남은 휴일도 잘 버틸 수 있을 거야!'
둘째를 영어학원에 보내고, 이제 본격적인 첫째와의 도서관 데이트 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주차가 나름 편리한 ㄷ도서관으로 가자고 했지만, 첫째는 ㅅ도서관에 자기가 좋아하는 바카라이 더 많다며 굳이 ㅅ도서관으로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어차피 첫째를 위한 데이트이기에 나는 이번에도 기분 좋게 양보를 했다.
"초롱아, 대신 주차 자리가 없으면 ㄷ도서관으로 가자!"
행운의 여신이 우리 편인 줄 알았다. 주차장 입구에 보이는 일반 1이라고 보이는 것을 보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앗싸! 엄마, 저 숫자 자리가 있는 거 맞지?"
"응, 오늘 우리가 운이 좋은 것 같아!"
사실, 마라탕을 먹다가 다 튄 옷을 집에 가서 갈아입고 오기에는 시간적인 소요가 많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 그냥 오기로 마음먹은 것인데, 다행히 걱정이었던 주차 자리가 해결되니 내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우리가 주차한 자리가 30분 대여 반납을 위한 자리라는 것이다.
일단, 다른 자리도 없었고, 주차 안내하시는 분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시길래, 우리는 도서관으로 들어갔고, 각자 원하는 바카라을 찾아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도서관에서 밀린 필사를 좀 해볼까? 스레드에 글을 짧게 올려볼까 하는 마음에 가져온 키보드를 찾았지만, 아뿔싸, 차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휴대폰과 차키만 챙겨서 차로 내려왔는데, 그때 딱 마주친 주차관리하시는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8xxx 차는 30분이 넘었네요, 지금 바로 출차해 주세요!"
"아, 이 자리는 오래 주차가 안되나 보네요."
그렇게 둘러보다가 안쪽에 두어 개 자리가 빈 것이 보였다.
"저 그럼 저 안쪽 자리로 옮길게요."
"위에 적힌 글 안 보이세요? 주차 이동 안돼요! 그냥 나가세요! 여기는 30분만 주차할 수 있는 곳이에요. "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주차에 대한 관리가 더 철저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대기 중인 차량도 없어서 다시 한번 문의를 드렸다.
"안 돼요 그리고 지금 30분 지났으니 출차하세요!"
"그러면 저 출차하고 다시 한 바퀴 돌아서 오면 주차가 가능한가요?"
"다른 차량들이 다 들어와서 안 돼요!!!"
슬쩍 주위를 살펴도 대기 중인 차량도, 도서관으로 향하는 차도 보이지 않았었다.
"지금은 대기중인 차량도 없는데, 주차 안에서가 안되면 밖에서 한바퀴 돌아서 다시 들어올꼐요.
만약 그 때 자리가 없으면 밖에서 대기해도 될까요?"
"안된다니까요!!! 나가세요!"
순간 주차 자리를 잘 못 인지한 내 잘못도 있었지만, 주차장에서 여유가 있는데도 이렇게 팍팍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화가 났다. 분명히 화를 내지 않기로 한 미션중인데, 오늘의 최대 위기였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싸우기 싫어서 근처 구청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미 인근 학원들이며 그 일대를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주차를 하는 곳이라 늘 주차공간이 부족하기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주차장을 지하부터 3층 외부 주차장까지 30분을 넘게 돌고 돌아서 겨우 옥상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주차를 하고 키보드를 가지고 10분을 걸어서 도서관으로 돌아오니 이미 나는 기진맥진해져있었다.
자리에 앉자 마자, 텀블러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었다.
'초롱아, 엄마 4시에 깨우러 와줘.'
첫째에게 톡을 보내고 기절하듯이 의자에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채로 잠이 들었던 나는 4시에 초롱이가 깨우러 온 후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5시가 훌쩍 넘어서야 일어난 나는 부랴부랴 짐을 넣어서 초롱이를 찾으러 어린이도서관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저 사람은 잠자러 왔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너무 챙피한데?'
이런 생각을하면서 1층에서 초롱이를 찾은 나는 웃음이 터지는 것을 겨우 참았다.
초롱이는 둥근 소파공간에 자리를 잡았다고 좋아했는데, 그 동그란 소파자리에서 몸을 웅크린채로 잠들어 있었다.
내심 도서관에서 잠만자다 가는거냐 주말 내내 놀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도서관에서 잠든 것은 나만이 아니란 사실에 웃음이 지어졌다.
손을 꼭 잡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는 우리둘의 웃음소리가 저녁 하늘을 채우는 것 같았다.
"초롱아, 사실 너가 깨우러 와서도 엄마 못일어났어. 계속 잠들었다가 지금 일어난 거 있지?"
"엄마, 나는 엄마 꺠우러 갔다 오는 길이 너무 졸렸어. 2층에서 1층으로 어떻게 내려와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우리 차 도서관에 세운거 아냐?"
초롱이에게는 도서관 주차장 사건을 간략하게 이야기 해주고, 그래서 갑자기 급피로가 몰려온 것 같다며 둘이서 또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내려오는 것도 힘들고 짜증이 났던 주차장 계단은 초롱이와 함께 올라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다.
"엄마, 너무 졸려, 우리 얼른 집에 가서 자자!
그리고 앞으로는 엄마말대로 ㄷ도서관에 갈래. 여기는 바카라이 별로다!"
우리의 3시간의 짧은 도서관데이트는 이렇게 많은 애피소드를 남겼지만,
아마도 오랜 시간 후에 초롱이와 나는 도서관에서 잠들다가 나왔던 추억만 오래 기억이 될것 같다.
그 추억 하나가 실타래처럼 초등 6학년의 여름방학의 추억을 줄줄이 끄집어 내겠지...
마라탕이 튄 흰 남방도,
멜론빙수를 두고 싸우던 남매도,
화를 참느라 애썼던 나도,
손을 꼭 잡고 주차장 계단을 오르며 까르르 웃었던 우리도,
그리고 무엇보다,
도서관에 데이트하러 갔다가 나란히 잠들어 버린 우리 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