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조선사도 흐른다! 57

선조 3 ㅡ선조시대 초기 인물들과 학자들

초롱초롱 박철홍의 조선사도 흐른다! 57

ㅡ 선조 3 ㅡ

(선조시대 초기 인물들과 학자들)


앞서 '선조'는 즉위 초 성군으로 나아갈 만한 기대를 받았다고 했다. 학문을 좋아했고 이름난 학자들을 불러 가르침을 구했다. 훗날 '임진왜란' 때 보여준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돌이켜보면 선조 시대를 전후하여 유독 큰 인물들이 많았다. 전쟁이 일어나자 나라를 지킨 장수와 의병장들이 등장했지만, 그 이전부터 학문과 문화를 이끈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지폐에 얼굴이 실린 '이황'과 '이이', '신사임당'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송순', '기대승', '이언적', '조식', '성혼'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이들이 모두 선조 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언적과 신사임당은 선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다른 인물들도 상당수는 앞선 시대부터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성리학자들이 남긴 가르침과 학맥은 훗날 '붕당정치'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고 학문적 견해가 달라 붕당이 생겼다고 볼 수 없다. 정치적 대립에 학맥과 인맥이 얽히고, 여기에 후에 학문적 명분이 더해진 것이었다.


한 사람씩 자세히 소개하려면 바카라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여기서는 선조 초기와 그 앞뒤 시대를 함께 바라보며 각 인물이 남긴 특징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먼저 ‘퇴계 이황’(1501~1570)이다. 이황은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탐구했다.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에는 임금부터 스스로를 닦아 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의 학문은 '유성룡'과 '김성일' 등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율곡 이이’(1536~1584)는 학문과 함께 현실정치 잘못을 고치는 데 힘을 쏟았다. 백성생활과 국가운영을 함께 고민했고, 선조에게 ‘성학집요’를 올려 군주 수양과 정치도리를 설명했다.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 큰 줄기를 이루었으며 훗날 서인계열에서 중요한 학문적 스승으로 존중받았다.


‘화담 서경덕’(1489~1546) 역시 선조 이전 인물이다. 개성을 중심으로 학문에 몰두하며 만물을 이루는 기를 중시한 독창적인 철학을 펼쳤다. 조선 성리학이 처음부터 하나의 생각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학자이다.


‘회재 이언적’(1491~1553)은 이황보다 앞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다진 인물이다. 그의 학문은 이황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중종'과 '명종' 때 관료로 활동했으나 정치적 탄압으로 유배되어 생을 마쳤다. 선조 때 활동한 학자는 아니지만, 그 시대 학문을 설명하려면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다.


‘면앙정 송순’(1493~1582)은 내 고향 담양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관료였다. 담양에 면앙정을 세우고 여러 문인과 교유했으며, ‘면앙정가’를 남겨 호남 가사문학 발전에 큰 자취를 남겼다. 이황과 이이가 성리학에서 큰 봉우리를 이루었다면, 송순은 우리말로 자연과 삶을 노래한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579년 선조 12년에는 여든일곱 살 송순을 위해 면앙정에서 '회방연'이 열렸다. 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해가 된 것을 기념하는 잔치였다. 현재기록으로 확인되는 조선 최초 회방연이다. '정철'을 비롯한 후배 문인들이 송순을 가마에 모시고 직접 메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당시 얼마나 깊은 존경을 받았는지 보여준다.


‘남명 조식’(1501~1572)은 이황과 같은 해 태어났다. 벼슬에 나아가기보다 재야에서 제자를 길렀으며 마음을 바로 세우고 옳다고 판단한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세를 중시했다. 학문을 말로만 끝내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곽재우'와 '정인홍' 등 그의 문하에서 배운 인물들이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에 나선 점도 이러한 학풍과 함께 살펴볼 만하다.


‘하서 김인후’(1510~1560)는 장성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였다.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시문에도 뛰어났다. 선조 즉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호남 학문을 이야기하면서 빼놓기 어려운 인물이다.


‘고봉 기대승’(1527~1572)은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한 학자였다. 스물여섯 살이나 위인 이황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간 도덕적 마음과 감정에 관한 ‘사단칠정 논쟁’을 벌였다. 두 사람은 의견이 달랐지만 서로 주장을 검토하며 학문을 발전시켰다. 나이나 명성에 눌리지 않고 질문한 기대승과,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황의 태도도 함께 볼 만하다.


‘구봉 송익필’(1534~1599)도 빼놓을 수 없다. 이이·성혼과 교유하며 학문을 논했고, 성리학과 예학에 밝아 김장생을 가르쳤다. 아우 '송한필'도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송익필 형제는 뛰어난 재능에도 신분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버지 '송사련'이 안씨 집안을 역모로 고변했던 일이 훗날 자신들에게 돌아오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 사연은 앞으로 정치적 갈등을 살펴볼 때 다시 다루겠다.


‘우계 성혼’(1535~1598)은 이이와 가까이 교유하면서도 학문에서는 자기 견해를 지켰던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간의 마음과 본성을 두고 편지로 토론했다. 성혼은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후학을 길렀고, 이이와 함께 훗날 서인 계열의 중요한 학문적 기반이 되었다.


‘사계 김장생’(1548~1631)은 송익필과 이이에게 배우고 예학을 발전시킨 학자였다. 선조 때부터 활동하여 광해군과 인조 시대까지 살았다. '송시열' 스승인 '김집' 아버지이자, 자신도 송시열을 직접 가르쳤다. 김장생 학문은 아들 김집과 제자 송시열에게 이어졌으며, 특히 그의 예학은 송시열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훗날 서인과 노론 학문적 기반을 이해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시대를 전후하여 문학과 예술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여성들도 있었다. '신사임당', '송덕봉', '허난설헌'이다.


‘신사임당’(1504~1551)은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났던 예술가였다. 흔히 훌륭한 아들 이이를 길러낸 어머니로 기억하지만 그 자신도 독자적인 재능과 작품을 남긴 인물이었다. 선조 때까지 살지는 않았으나 이 시대 문화와 인물들을 함께 살펴볼 때 떠올릴 만하다.


‘송덕봉’(1521~1578)은 담양 출신 여성 문인이자 ‘미암일기’를 남긴 '유희춘' 부인이다. 선조가 즉위했을 때 마흔일곱 살이었고, 선조 11년까지 살았다. 시문에 능했으며 남편과 글을 주고받으면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다.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한 아내로만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미암일기에는 부부가 문학을 나누고 때로는 서로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모습도 남아 있다.


‘허난설헌’(1563~1589)은 선조가 즉위했을 때 다섯 살이었다. 성장과 창작 활동이 선조 시대에 이루어진 시인이다. '허균' 누이로도 잘 알려졌지만, 그보다 먼저 자기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할 인물이다. 현실에서 겪은 슬픔과 외로움뿐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을 시에 담았으며, 그녀가 남긴 시는 허균을 통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훗날 광해군 때 대동법 시행을 이끈 ‘오리 이원익’(1547~1634) 도 선조 때부터 활동한 인물이다. 선조 초 문과에 급제한 그는 지방관으로 백성의 생활을 돌보았고, 임진왜란 때는 군량 확보와 민심수습에 힘을 쏟았다. 학문 이론뿐 아니라 실제정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볼 때 기억해야 할 관료이다.


이 밖에도 유성룡, 이산해, 정인홍, 정철 등 선조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학문과 문학뿐 아니라 현실정치에도 깊이 관여했다. 앞으로 붕당대립과 임진왜란을 살펴보면서 각 인물이 걸었던 길을 자세히 다루겠다.


이처럼 선조는 앞선 시대부터 쌓여온 학문적 성과와 풍부한 인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훌륭한 학자가 많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대 정치까지 훌륭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학문을 존중하는 것과 그 가르침을 정치로 실천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선조는 그 많은 가르침과 인재를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는 데 활용했을까?'


하지만 불행히도 선조가 걸어간 길은 즉위 초 기대와 크게 달랐다.


'정여립'이 역모를 꾀한다는 고변에서 시작된 사건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규모 옥사로 번졌다. 이 일로 인해 붕당 대립은 상대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피의 정치로 치달았다.


그 과정에서 국왕 선조 바카라임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기축옥사’이다.


다음 편에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ㅡ 초롱박철홍 ㅡ


전립에 군복차림을 한 선조 추정의 초상화 (1592 ~ 1593년 제작 추정)이나 확실하지 않음. 윤탁연이 입수하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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