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 3 ㅡ한명회, 조선 최고의 바카라사인가, 간신인가? 2)
초롱초롱 박철홍의 조선사도 흐른다! 31
ㅡ 계유정난 3 ㅡ
(한명회, 조선 최고의 바카라사인가, 간신인가? 2)
'한명회'(韓明澮)는 1415년에 태어났다.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 또는 사우당(四友堂)이다.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건국 직후 명나라에 파견되어 ‘조선’과 ‘화령’ 두 국호 후보 가운데 하나를 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결국 명나라 황제가 ‘조선’을 국호로 승인하면서 그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인물이다. 한상질 동생 '한상경'은 개국공신이었다.
아버지 '한기'는 사헌부 감찰을 지냈으며 훗날 아들 한명회 덕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어머니는 예문관대제학 '이적'의 딸인 여주 이씨였다.
이처럼 한명회는 엄청난 명문가 금수저 출신이었지만 한명회 인생 출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일찍 부모를 잃었고 동생 '한명진' 과 함께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다행히 가문도움을 받아 학문을 배울 수 있었고 원주에 머물던 유학자 '유방선' 문하에서 평생 친구가 되는 '권람', '서거정' 등과 함께 공부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친구 권람은 '문종' 즉위년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들어갔지만 한명회는 과거에 계속 떨어졌다. 주변에서 그를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명회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후대에 전하는 기록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궁달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선비로서 어찌 부유(腐儒), 속사(俗士)들의 말 한마디에 실망하고 비통해하기를 즐겨하겠는가?”
그렇게 한명회는 권람과 전국 산천을 유람하며 세상을 살폈다.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는 듯했지만 그가 기다리던 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친구들이 하나둘 높은 관직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그는 과거에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야 했다.
결국 1452년, 지금으로 봐도 늦은 나이인 38세에 이르러서야 문음(조상 덕으로 특채)으로 '경덕궁직'을 얻었다.
경덕궁은 개성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옛 잠저였다. 말이 관직이지 높은 벼슬과는 거리가 먼 미관말직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전하는 일화에 따르면 한명회는 이미 높은 관직에 올라 있던 친구 권람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문장과 도덕은 네게 양보하겠지만 정사만은 양보할 수 없다.”
마치 언젠가는 자신에게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권람 역시 그런 한명회를 단순한 허풍쟁이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능력과 사람됨을 높게 평가했다. 그런 점을 보면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한명회에게는 분명 남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한명회에게 정말 기회가 찾아온다.
한명회가 관직에 들어간 바로 그해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조정은 '김종서'와 '황보인' 등 대신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고 왕은 어렸으며, 왕족 가운데에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같은 강력한 인물들이 버티고 있었다.
정치적 긴장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한명회 눈에는 바로 그 혼란이 자신 인생을 바꿀 기회로 보았다. 그는 친구 권람이 수양대군과 가까운 것을 알고 수양대군 뜻을 한번 떠보라고 권했다.
'성종실록' 한명회 졸기와 관련 기록들을 보면 한명회가 권람에게 어린 임금 아래 어지러운 정국을 이야기하면서 수양대군 활달함을 한고조 '유방'에, 영명하고 무용 있는 모습을 '당태종'에 비유하며 뜻을 한번 떠보라고 권하는 내용이 나온다.
권람은 한명회 이야기를 수양대군에게 전했다.
마침내 수양과 한명회가 만났다.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은 통했다. 기록에서는 마치 오래전부터 사귀었던 사람처럼 뜻이 맞았다고 전한다. 나이도 한명회가 두 살 많았지만 거의 비슷한 또래였다.
한명회는 곧 '홍달손'을 비롯한 무사 30여 명을 천거했고 이후 수양대군의 은밀한 정치계획에 깊숙이 들어갔다. 학문과 과거에서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한명회가 권력 흐름과 사람 마음을 읽고 판세를 움직이는 바카라략에서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수양대군은 그런 한명회를 가리켜 훗날 말했다.
“나의 자방(子房)이다.”
자방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최고의 바카라사 '장량'의 자다.
그때부터 한명회는 말 그대로 수양대군의 장자방이 된다.
계유정난 과정은 앞편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만 보자.
계유정난 직전까지만 해도 한명회는 조선관료 슬롯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번번이 실패했고 마흔을 바라보는 38세 나이에 겨우 미관말직 하나를 얻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계유정난에 성공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군기녹사가 되고 정난공신 1등에 바카라봉되면서 사복시소윤으로 올라갔고, 이듬해 다시 승정원 동부승지로 뛰어올랐다. 이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되면서 한명회 출세길에는 더욱 거칠 것이 없어졌다.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었다.
오랫동안 과거시험에 떨어지며 변변한 벼슬 하나 얻지 못했던 사람이 마흔을 눈앞에 두고 만난 단 한 번의 기회로 조선 권력자가 되는 길에 들어섰다.
한명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좋든 나쁘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주 크게 남겼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에도 한명회처럼 오랫동안 자기 때를 기다리다가 거대한 정치적 변화 속에서 단숨에 인생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사주팔자를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한명회 인생은 어쩌면 가장 부러워할 만한 팔자인지도 모르겠다.
늦게 출발했지만 한번 출발한 뒤에는 조선 권력자가 되었고, 영의정에 올랐으며, 두 딸은 각각 예종과 성종의 왕비가 되었다. 수많은 토지와 노비를 하사 받아 엄청난 부를 누렸고 73세까지 장수했다. 그야말로 당시 사람들이 현실에서 바랄 수 있는 부귀와 권세, 자손의 영달과 장수까지 거의 모든 것을 누렸다고 할 만하다.
바로 여기에서 한명회 이야기를 잠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성리학은 불교나 기독교처럼 죽음 이후 사후세계와 구원을 중심에 놓는 종교는 아니었다. 현실슬롯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임금과 신하·부모와 자식·부부와 형제 사이에 어떤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조선 사람들이 모두 현실의 욕망에서 초연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리학적 명분을 그토록 강조했던 조선슬롯에서도 관상이나 사주, 풍수와 점복 같은 민간신앙은 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괴력난신을 경계하고 미신을 멀리한다고 말하면서도 좋은 묏자리를 찾아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고, 집안에 큰일이 있으면 길흉을 묻고 앞날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아무리 높은 도덕과 명분을 말해도 현실에서 원하는 것은 결국 잘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물이 많았으면 좋겠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고, 병 없이 오래 살고 싶고, 자식과 손자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우리 슬롯에 들어온 불교와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와 토속신앙 역시 민간 차원에서는 이런 현세구복 신앙과 결합한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바라는 ‘복’은 언제나 아주 현실적이었다.
재물과 권세, 무병장수와 자손번창.
어쩌면 이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가장 솔직하게 원하는 삶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첨단과학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사주를 보고, 좋은 날짜를 택하고, 관상을 이야기하고, 조상 묏자리와 풍수를 따지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 주변 역술과 풍수, 무속을 둘러싼 이야기가 언론에까지 오르내리곤 한다.
대표적으로 2021년 국민의힘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윤석열후보'가 여러 차례 TV토론에 손바닥에 '王'자를 쓴 채 나온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무속이나 주술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벌어졌다.
이 논란 자체가 우리 슬롯에서 이런 문제가 여전히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준다.
이토록 현실에서 복을 구하고 잘살기를 원하는 슬롯인데 정작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3.2명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우리 슬롯는 특히 이런 이중적 구조가 심하다. 겉으로는 한명회 같은 부류를 욕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런 삶을 부러워한다. 슬롯지도층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도덕과 명분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뒤에서는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즘 인사청문회를 보다 보면 왜 국민 눈높이에 맞는 흠 없는 사람을 찾기가 이토록 어려운지 씁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높은 도덕성을 말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면 말과 현실 사이 간극이 너무 큰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만큼 인간이 바라는 ‘잘 사는 삶’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설명하기 힘들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다시 한명회에게 돌아오게 된다.
역사를 보면 명분보다 현실과 권력을 선택한 사람 가운데 생전에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후대에 그들의 선택을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누렸던 권력과 부, 성공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한명회 역시 마찬가지다.
계유정난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그는 자신의 기회를 발견했고 그 기회를 잡았다. 그 결과 조선 최고권력자가 되었으며 두 딸을 왕비로 만들고 자신 가문을 당대 최고의 가문으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같은 시대, 한명회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성삼문'과 '박팽년'을 비롯한 사육신이다.
한명회와 '신숙주' 등은 새로운 권력과 현실을 선택했다.
반면 사육신은 이미 왕위에서 밀려난 옛 임금 '단종'에 대한 의리를 버리지 않았고,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한쪽은 살아남아 새로운 권력 중심으로 올라갔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명분과 의리를 지키려다 죽었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한명회'와 '신숙주', 그리고 '사육신'.
그들 삶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권력을 잡아 살아남고 현실정치를 움직이며 나라를 경영한 삶인가.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의리를 위해 부귀와 목숨까지 버린 삶인가.
과연 어느 쪽 삶이 더 가치 있었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역사는 결과만 놓고 보면 한명회와 신숙주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 기억 속에는 죽은 성삼문과 박팽년도 살아남았다.
오히려 수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함께 불러내고 있다.
한명회에게는 권력이 있었고, 사육신에게는 죽어서까지 남은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한번 살펴보자.
이어서 <세조와 사육신> 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한명회 초상화는 상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