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가자

by수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인스브루크 왕궁 박물관으로 향했다. 인스브루크 카드가 있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기에 들렀을 뿐,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박물관을 휘리릭 둘러보고 나오며 우리는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며칠 전 호헨잘츠부르크 성에서는 입장료가 아깝다며 설명문 하나까지 박사 논문 읽듯 꼼꼼하게 읽던 사람들이었는데, 무료가 되니 이렇게 대충 보고 나오는 모습이 우스웠다.


시내로 자리를 옮겨 관광바카라자에 소개된 황금지붕을 찾아갔다. 사진 속에서는 인스브루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처럼 웅장해 보였는데, 막상 눈앞에 나타난 건 생각보다 소박한 건물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지붕에 황금을 얹어놓은 게 끝이었다. 너무 정직한 이름이었다.








"이게 다야?"


우리는 김이 빠지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또 한 번 웃었다. 사진과 현실은 늘 조금씩 달랐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습관처럼 관광바카라자와 구글맵을 펼쳤다. 그런데 엄마가 바로 옆에 보이는 식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가자."


관광바카라자에 소개된 맛집도 아니고, 검색해서 찾아낸 식당도 아니었다. 그냥 가장 가까운 식당이었다. 맛집을 찾아가자는 내 말에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많이 걸었고, 배도 고팠다. 나 역시 더 찾아본다고 딱히 나은 식당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못 이기는 척 엄마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관광객들이 왜 여기에?'라는 얼굴이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가 괜히 재미있었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메뉴로 까르보나라와 파르페를 주문했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깨달았다. 국물이 자작한 한국식 크림 파스타가 아니라, 꾸덕하고 진한 치즈 향이 나는 진짜 유럽식 까르보나라였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조용히 항복을 선언했다.


"거봐요, 맛집을 그래도 찾아가는 이유가 있죠?"

"완전 유럽식이네. 그래도 풍경은 좋잖아. 저기 황금지붕 바로 보인다."


완전 유럽식이었을지, 단순히 맛이 없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괜찮았다. 창밖으로는 황금지붕이 보였고, 우리는 파르페를 나눠 먹으며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까지 먹고 나니 긴장은 완전히 풀렸다.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기대했던 노르트케테반도 다녀왔고, 오늘의 목표는 이미 충분히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웠다. 그래서 계단 때문에 가지 말자고 했던 시의 첨탑으로 향했다. 비엔나에서 뼈저리게 경험하고 다시는 계단을 오르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마음 앞에서 또 무너졌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숨이 턱턱 막혔다.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에요."

"진짜."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숨은 찼지만 이상하게 계속 웃음이 났다. 중간중간 쉬어 가며 끝내 꼭대기에 올랐다. 생각보다 전망은 아름다웠다. 비에 젖은 도시의 색은 더 짙었고, 멀리 보이는 산들은 묵직하게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황금지붕은 생각보다 소박했고, 점심은 입에 맞지 않았고, 시의 첨탑은 역시 계단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날은 잘된 것보다 웃었던 일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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