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이 얼굴을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by수진

이젠 기차 안에서 우리의 역할에 맞게 착착 움직였다. 엄마는 자리를 확인하고, 나는 캐리어를 보관하고. 합이 잘 맞춰진 환상의 짝꿍이었다. 고작 5일간 같이 기차여행을 했을 뿐인데, 우리는 오랫동안 그래왔던 사람들처럼 편안했다. 우리는 주섬주섬 아침 식사를 꺼냈다. 갓 구운 바삭한 샌드위치에 나는 과일 주스를, 엄마는 조금 전 사온 승리의 아메리카노를 곁들였다.


여행을 준비할 때 나는 엄마의 식사가 가장 걱정이었다. 혹시 한식을 찾으면 어떡하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괜한 걱정이었다. 엄마는 완벽한 유럽인이었다. 원래도 밥보다 빵을 좋아하던 사람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변한 건 나였다. 샌드위치는 간식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새 샌드위치로 든든한 한 끼를 해결하고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우리는 창가에 기대어 풍경을 바라봤다. 한국에서는 늘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했기에 기차 여행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는 대부분의 이동을 기차로 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좋아졌다. 창밖 풍경이 끊임없이 변했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를 벗어나자 세상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소복이 쌓인 눈, 드문드문 나타나는 민가, 멀리 보이는 성당 첨탑.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지역도 있었고, 지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인 마을도 있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말을 멈췄다. 가끔 눈을 마주치며 웃거나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눈이 너무 많이 오니 걱정도 조금 됐다. 과연 여행이 괜찮을까, 우리는 지금 더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가고 있는데. 하지만 곧 그런 걱정은 잊어버렸다. 걱정한들 눈이 안 오게 되는 건 아니니까. 기차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어느 순간 창밖에 만년설이 덮인 거대한 산들이 나타났다. 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대했다. 끝없이 이어진 하얀 능선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나는 너무 놀라 엄마를 불렀다.


"엄마, 저것 좀 봐요."

그런데 엄마는 대답 대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울어요?"

엄마는 스스로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눈물이 난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처음 본다고. 엄마의 눈은 계속 촉촉했다. 나는 조용히 조금 떨어져 앉았다. 엄마가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때는 엄마가 우는 모습이 좀 어색했다. 왜 우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크면서 엄마가 우는 걸 본 적도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은 들었다.


아, 나는 이 얼굴을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왜 우는지는 모르겠는데, 창밖의 설산보다도 그 풍경을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목소리가 떨리던 것, 눈가가 젖어 있던 것, 그 모든 장면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여행이 다 끝난 뒤에야 그 장면이 짠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런 풍경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만의 가정이 생기고 나니 그게 점점 어려워졌다. 더 해주고 싶은데 더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괜히 울컥한다. 그때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떨어져 앉는 대신 손이라도 잡아줬을 텐데.


늘 엄마에게 행복을 받기만 했는데, 그날만큼은 나도 엄마의 행복에 조금쯤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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