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달려 인스브루크에 도착했다. 11시부터 비 예보가 있었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한국에서 꼼꼼히 일정을 짜 온 덕분에 우리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코인라커에 짐을 밀어 넣었다. 엄마는 지갑만, 나는 카메라만 챙긴 채 가볍게 역을 나섰다. 우리는 본전을 뽑겠다며 의기양양하게 인스브루크 카드를 구입했고, 곧장 노르트케테반을 타러 향했다.
가는 길은 한산했다. 이 눈보라를 뚫고 산에 올라가려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두꺼운 파카를 입은 직원 한 명과 우리 모녀, 단 셋만 탄 케이블카는 새하얀 세상 속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창밖은 온통 하얬다. 나무 꼭대기까지 눈이 두껍게 내려앉아 있었고,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산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세상이 색을 잃고 흰색만 남은 것 같았다. 그 풍경 앞에서 엄마의 눈은 계속 반짝였다.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왜요?"
엄마는 한국에서 가져온 사탕 몇 개를 꺼냈다.
"저 사람한테 사탕 줘도 돼?"
나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요? 그러지 마요."
그런데 엄마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뭐가 왜예요."
"아니, 그냥 주고 싶은데."
"왜요?"
엄마는 창밖을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냥 너무 좋아서.”
나는 끝까지 말렸다. 괜히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나, 싫어하면 어떡하나,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사실 나는 늘 그런 쪽이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보다 실례가 되지 않을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반면 엄마는 그런 걱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좋으면 표현하고, 고마우면 건네고, 행복하면 나누는 사람. 결국 엄마는 사탕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코리안 캔디."
이미 우리 실랑이를 한참 구경하고 있던 직원은 활짝 웃으며 사탕을 받아들었다.
"땡큐!"
엄마도 따라 웃었다. 나는 누군가가 거절하면 엄마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는데, 엄마는 애초에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작은 온기를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여행 내내 그런 모습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낯선 언어와 낯선 환경 속에서 엄마는 줄곧 나를 따라다녔으니까. 그날 케이블카 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원래의 엄마를 만났다.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
정상에 도착하자 감탄보다 먼저 바람이 우리를 덮쳤다. 눈앞은 그냥 새하얀 세상이었다. 무언가가 보인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이 사방으로 흩날렸고, 조금 떨어진 곳조차 흐릿하게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안 보였다. 산도 안 보이고, 전망도 안 보이고, 절벽도 안 보였다. 특히 절벽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산 정상에는 관광객이 조금 있었다. 열 명쯤 됐을까.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데, 우리를 포함해 열 명 남짓한 사람만 있다는 사실이 괜히 웃겼다.
"이래서 눈에서 길을 잃나 봐요."
"아니, 무서울 정도인데요?”
우리는 웃으면서도 서로 팔을 꼭 붙잡고 걸었다. 살면서 가장 바짝 붙어 다닌 순간이었다. 이유는 낭만이 아니라 생존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은 참 신기하다. 이런 날씨에도 사진은 남기고 싶었다. 관광객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한 장 찍어드릴까요?"
"아, 감사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메라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중심을 잡아야 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리를 바꿔주려다가 휘청거리고, 사진을 찍어주다가 눈을 맞고, 서로를 붙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 전망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날 산 정상에 있던 사람들은 이상한 동지애 같은 걸 공유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흰색만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았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걸 본 것도 처음이었고, 산 전체가 눈으로 뒤덮인 풍경도 처음이었다.
세상에 정말 이런 곳이 있구나. 그 생각만으로도 신이 났다. 조금 더 올라갈 수 있는 길도 있었지만 우리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시체도 못 찾겠는데."
"가지 맙시다."
이번에는 정말 미련이 없었다. 대신 우리는 산장으로 들어갔다. 사실 더 이상 할 것도 없었다. 앞은 안 보이고, 바람은 세고, 계속 밖에 있기에는 너무 추웠다. 그런데 이대로 내려가기에는 또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들어간 산장이었다.
"엄마,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커피 한 잔은 마시자.”
"엄청 비싸겠지?”
의외로 가격은 아래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괜히 메뉴판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뜻밖의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따뜻한 커피와 감자 수프, 사과 스트루델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수프를 떠먹는 순간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창밖은 여전히 새하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행복했다.
"하루 종일 여기 있어도 되겠다.”
엄마가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어디를 더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냥 눈을 보고, 따뜻한 수프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가끔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국 우리는 아쉬움을 안고 산을 내려왔다. 내려가는 케이블카 안에도 우리 둘뿐이었다. 올라올 때도 그랬고, 내려갈 때도 그랬다. 마치 거대한 산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낸 기분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내려온 뒤였다. 산 위에서는 눈보라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래로 내려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그쳐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옥빛 강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케이블카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한참을 내려다봤다.
"와."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그 강의 색을 기억한다.
언젠가 TV에서 인스브루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저기가 저런 곳이었다고?"
우리는 눈밖에 보지 못했는데, 화면 속 인스브루크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만난 인스브루크를 좋아했으니까.
눈보라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도시.
거대한 산을 전세 낸 것처럼 돌아다녔던 날.
케이블카 안에서 한국 사탕을 건네며 웃던 엄마의 얼굴.
눈보라 한가운데서 아이처럼 신나 하던 엄마의 얼굴.
그리고 살면서 본 엄마 중 가장 행복해 보였던 얼굴.
그래서 지금도 인스브루크를 떠올리면 풍경보다 먼저 엄마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