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시계가 멈춘 것 같다.
오전 근무는 고작 네 시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하루보다 길게 느껴졌다.
일을 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봤다.
조금 전 확인했을 때와
분침의 위치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거야.
아직 점심도 안 됐잖아.’
네 시간 동안 시계를 삼백 번은 본 것 같았다.
마침내 퇴근 시간이 되었다.
육지 위를 기어가던 거북이처럼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그제야 조금 빨라지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를 만나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옷장 문을 열었다.
입고 나갈 만한 옷이 보이지 않았다.
연애를 해본 적 없던 나는
첫 데이트에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가장 깨끗해 보이는 옷을 꺼냈다.
생각해 보니 새 옷을 사본 지도 오래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났다.
우리 집 형편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나.
네 식구가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누나와 내가 온라인 게임 생활을 시작하면서
살림은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었다.
병역특례를 시작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던 때였다.
기본급으로 47만 원.
잔업과 특근을 백 시간 가까이해
월급이 90만 원에 조금 못 미쳤다.
그중 50만 원은 매달 어머니께 드렸다.
집을 나서려는 내게 어머니가 말했다.
“돈 아껴 써.
술 먹는 데 너무 많이 쓰지 말고.”
평소라면 그냥 흘려들었을 말인데,
그날따라 마음에 걸렸다.
“옷 한 벌도 마음에 드는 거 못 사는데,
아껴 쓸 돈이 어딨어.”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자 친구 한 번 없던 내가
이제야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데,
마음에 드는 옷 한 벌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던 것 같다.
부천역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 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너무 빨리 나왔네.”
혼잣말을 하며 근처 PC방으로 들어갔다.
스타크래프트 한 판 했지만
전혀 재미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을 텐데,
그날은 게임 속 유닛보다
화면 아래 시계만 눈에 들어왔다.
결국 한 판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후 일곱 시 삼십 분.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내가 삼십 분을 못 기다리겠냐.’
약속 장소에 서자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됐다.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떤 술집을 좋아할까.
내가 아는 데로 가자고 해도 괜찮을지
걱정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몇 군데를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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