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장마 같은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이 이어지던 어느 계절의 이야기다.
그렇게 뜨거웠던 햇살을 피해 다니던 날이 얼마나 되었다고 비구름 사이로 햇살이 얼굴 내밀지는 않는지 살펴보곤 한다. 하늘 맑은 날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마가 이렇게 지루할 때가 있었던가 싶은 그런 날이다. 아침 출근길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실랑이 소리가 들려온다.
“요 녀석아, 비가 오잖아, 왜 안 온다고 그래”
우산을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되는 가랑비가 살짝 내리는 중에 환갑을 넘은 이웃 어르신이 푸념 담긴 어투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상대가 누구인가 보니 노란색 어린이집 가방을 등에 메고 있는 까까머리를 한 아이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어린이집 등원 길에 할아버지가 아이를 이륜차에 태우고 다니는 이웃이었다.
“아냐, 아냐. 이건 촉촉비란 말이야”
할아버지의 구박에 벌써 눈물이 글썽글썽한 아이는 애써 지금 내리는 것은 비가 아니고 촉촉비란다.
‘촉촉비라...’
듣고 보니 딱 맞는 말이다. 촉촉하게 살짝살짝 내리는 비가 습하고 미끄러운 꿉꿉함보다는 조금 서늘한 바람과 함께 청량한 느낌을 주는 그런 가랑비였으니까. 할아버지와 아이는 50년 세월은 족히 차이가 남에도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지금 내리는 것이 비인지, 촉촉비인지를 놓고 열띤 논쟁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비는 참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장마 기간에 오랫동안 내린다는 의미의 궃은비, 빗줄기가 가늘어 안개처럼 부옇다는 의미의 안개비, 안개비보다 조금 더 굵은 이슬비, 장대비와는 다르고 이슬비보다는 굵은 빗줄기는 보통 가랑비로 부른다. 그런가 하면 동물의 이름을 가진 비도 있다. 볕과 함께 내리다 그치는 비는 특이하게 여우비라는 동물의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하다. 그 밖에 억수, 장대비, 소나기, 부슬비, 실비, 가루비, 싸락비, 주룩비, 채찍비, 도둑비, 해비 등 비는 정말 많은 얼굴과 그에 맞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도시에서도 도시농부라는 이름으로 농부 일을 취미 삼아 하는 이웃도 많은데, 비와 농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서 농사와 연관된 비도 꽤나 많다. 모종비는 아마도 모종을 밭에 심기에 좋은 비를 의미하는 것 같고, 목비는 모낼 때 한목 오는 비를 의미한다. 잘 쓰이지는 않지만 꿀비라는 표현도 있는데 농사짓기에 적합하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 이렇듯 비는 참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할아버지와 아이의 대화 속에 등장한 ‘촉촉비’는 이날 처음 듣는 비의 이름이었다. 궁금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두 사람의 50년 세월 사이에 끼어들었다.
“촉촉비는 비가 아닌 거니?”
아이는 그렇다고 한다. 촉촉비는 비와는 다른 것이라고 했다. 촉촉비는 비가 아니고 촉촉한 바람 같은 것이라고 애써서 설명을 이어갔다.
“아니 글쎄 이 녀석이 비가 오는데 어린이집에 스쿠터로 데려달라지 뭔가.”
그제야 둘의 비에 대한 논쟁이 이해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손자로 보이는 아이를 매일 아침 스쿠터에 태워서 가까이에 있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곤 했는데, 아무래도 이륜차이다보니 빗길에는 미끄러워서 비가 오는 날에는 태워다 줄 수 없다고 한 모양이다. 다행히 둘 사이에 비에 대해 토론회가 벌어졌던 이 날 아침에는 아직은 땅이 젖어 있지 않아서 스쿠터를 이용해도 문제는 없었지만, 손자가 걱정된 할아버지는 비는 비니까 약속대로 걸어가야 한다고 설득하던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의 표현에 의하면 ‘촉촉비’인 빗줄기가 훨씬 가늘어졌다. 결국, 할아버지는 아이의 촉촉비 주장을 받아들이고 스쿠터를 타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것으로 아침 시간의 비에 관한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아이보다 50년은 족히 더 살아온 세월의 경험이 있지만, 세상에 없던 촉촉비까지 탄생시킨 아이의 절실한 노력 앞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아이에게 안전모를 씌우고 안전띠를 맨 뒤에 출발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아이의 표정이 참 행복했다. 그 미소는 누군가를 이긴 승자의 미소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안길 때 저절로 떠오르는 그런 평온한 미소였다.
이날 오후에는 가을장마다운 궃은비가 세차게 몰아쳤다. 굵은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빗줄기면 꼬마 녀석이 촉촉비라고 우길 수는 없겠는데’
아마도 어린이집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큰 우산에 의지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터벅터벅 돌아왔을 것이다. 아침에 보았던 아이의 고집과 열정으로 볼 때 할아버지의 신나는 스쿠터를 타지 못하게 만든 궃은비는 이날 온종일 아이에게 푸념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른이 다 된 나는 비를 비라 말하지 않고 촉촉한 바람이라고 주장하는 아이의 말이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어리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촉촉비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맴돌기 시작했다. 촉촉비라 말할 수 있는 그 아이가 내심 부러웠기 때문이다.
어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생의 경로에도 가끔은 뜻하지 않게 비가 내리곤 한다. 피할 수 있는 비는 피하곤 하지만, 어느 날은 내리는 비를 온전히 다 맞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 비 맞는 것이 그리 아프지 않지만, 가끔은 혼자서 그 비를 다 맞아야 하는 날은 스스로 모습에 처량한 것도 사실이다. 어른이 다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바카라임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짊어지고 내리치는 장대비를 맞는 날이면 조금 더 아프기는 하다.
그렇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픈 마음을 솔직히 꺼내서 이야기하고 손 내밀면 함께 해줄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 솔직히 꺼내지 못하는 것은 어른의 자존심일 뿐이다. 인생은 결국 함께 걷는 동행의 길인데 내가 조금 부족하다는 것 있는 그대로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마음속에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혼자 고민하기 힘든 일 앞에서 동행에게 손 내밀며 촉촉비의 아이처럼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저와 함께 촉촉비 속을 거닐어 주시렵니까?’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가스 캘러헌, <냅킨 노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