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짓

by이해의 등대

세상은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가혹한 잣대로 우리의 시간을 재단하곤 한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내가 살아온 시간의 절반 이상은 아마 폐기 처분되어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나는 살면서 참으로 많은 쓸데없는 짓에 나의 생을 낭비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모하고도 기이한 몰입의 순간들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뼈대가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목록의 시작은 지극히 사소하고도 감각적이다. 한여름, 웅웅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 앞에 앉아 내 눈알을 그 회전 속도에 맞춰 굴려본 적이 있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날개가 멈춘 듯한 정지 화면을 포착하고 싶었던 그 집요한 시도는, 결국 심한 어지럼증과 눈 근육의 경련으로 끝이 났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하나하나 세어보기도 했다. 숫자가 수천을 넘어가며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 나는 무한(無限)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몸의 감각으로 이해했다. 일출 때는 해가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몸을 드러낼 때까지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응시했다. 시신경이 타오르는 듯한 통증 뒤에 남은 것은 황홀경이 아니라 눈앞을 가린 보라색 잔상이었지만, 태양과 정면으로 승부했다는 묘한 승리감만은 선명했다.


관찰은 공원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떼 지어 다니는 비둘기들을 보며 저들이 모두 똑같다는 편견에 도전하기 위해, 한 마리 한 마리에 이름을 붙여 구분하기 시작했다. 부리의 미세한 굴곡과 목덜미 깃털의 색조 차이를 발견하며 구구 1호와 구구 2호를 구별해 낼 때의 희열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독한 즐거움이었다.


기술적인 호기심은 더 지독한 실행으로 이어졌다. 매달 나가는 웹 호스팅 비용을 아껴보겠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앞세워, 집 안 구석에 굴러다니던 낡은 부품들을 모아 미니 서버를 구축했다. 초소형 컴퓨터인 라즈베이퍼 파이를 기반으로 리눅스 환경을 구축하고, 각종 기능을 설정하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특히 가정용 유동 IP 환경에서 외부 접속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도메인을 연결하고, 포트 포워딩의 복잡한 설정을 거쳐 클라우드플레어 터널링 같은 기술로 고유의 접근 경로를 확보하는 과정은 호스팅 비용 몇 달 치를 아끼기 위해 수백 시간의 노동을 투입하는 전형적인 배보다 배꼽이 큰 일이었다. 그러나 내 손으로 구축한 그 작은 실리콘 조각이 세상의 도메인과 연결되어 신호를 주고받는 순간의 전율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해와 조립에 대한 열망은 고가의 카메라도 피해 가지 못했다. 기계의 심장 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는 일념하에 멀쩡한 디지털카메라를 나사 하나까지 전부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는 만용을 부렸다. 재조립 후 바카라상 위에 남은 정체불명의 나사 한 알을 보며 인생의 여백을 깨닫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렌즈와 셔터가 맞물려 돌아가는 유기적인 메커니즘을 몸으로 익혔다. 산바카라길에는 리트머스 시험액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발길 닿는 곳마다 토양의 산도를 측정했다. 이 땅은 산성이고 저 담장 밑은 알칼리성이라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데이터들을 수집하며 나는 발밑의 세계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때로는 문학적 호기심이 물리적 실험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북미의 나비 날갯짓이 한국의 태풍이 된다는 나비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기상도를 뒤적이며 공기의 흐름을 추적했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는 실제로 밑동만 남기고 다 주는 나무가 식물학적으로 가능한지, 혹은 그런 희생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집요하게 조사했다. 혹한기에는 분무기를 들고나가 끓인 물을 허공에 뿜어대며 순식간에 결정이 되어 언 채로 떨어지는 물리적 경이로움을 만끽했고, 한낮에는 분무기로 인공 무지개를 만들며 이웃들의 이상한 시선을 견뎌냈다.


이 목록의 정점은 자전거 전국 일주였다. 두 발의 힘으로 국토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열망은 제주도에서 맞이한 대형 사고로 멈춰 섰다. 안면부터 다리까지 전신 골절이라는 처참한 결과표를 받아 들고 일 년간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사람들은 혀를 찼다. 그 고생을 해서 얻은 게 고작 망가진 몸이냐고, 참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수많은 쓸데없는 짓들이 내 안의 어떤 근육을 단단하게 단련시켰는지를. 선풍기 날개를 쫓던 그 집요함과 서버를 구축하며 사투를 벌였던 끈기는, 마을 주민 대표로서 수억 원이 드는 승강기 교체와 전면 도색 작업을 꼼꼼하게 완수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비둘기의 이름을 부르던 다정함과 토양 성분을 따지던 세심함은, 분쟁으로 얼룩져 버려졌던 공유지를 주민 모두의 쉼터로 일구어내는 인내심이 되었다. 부품을 조립하고 카메라를 해체하던 그 무모한 실행력은, 감시단속직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입법 조례 활동에 참여하여 복잡한 법조문을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하는 용기로 이어졌다.


한자 사람 인(人) 자를 보면 두 사람이 서로의 등에 몸을 기대어 의지하고 있는 형상이다. 혼자서는 온전히 설 수 없고, 혼자서는 자신의 전방위를 살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내가 성실하다고 믿을수록 사각지대는 더욱 깊어지기에, 나는 나의 무모했던 실험들과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조언들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메워왔다.


작고, 쓸데없고,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행동의 경험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고, 오로지 나의 호기심과 의지로 세상을 대면해 본 소중한 훈장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안에도 잘못된 것이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삶의 자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수많은 실패한 실험들 속에서 뼈저리게 익힌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남을 아프게 하는 일이 아니고 법의 테두리 안이라면 무엇이든 해보기를 권한다. 남들이 쓸데없다고 말하는 그 짓이, 언젠가 당신의 삶을 구원하거나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강력한 힘으로 변모할지도 모를 일이다. 단,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한다. 태양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시력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며, 선풍기 날개의 회전수는 인간의 눈알을 굴려서는 결코 쫓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몸소 증명했으니, 당신은 그저 그 무모했던 열정의 서사만을 가져가기를 바란다. 인생은 결국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순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느냐에 따라 그 결이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리고 다행히도 쓸데없이 만들었던 나의 프로필 랜딩 페이지는 유료 호스팅 없이 내 바카라상 위 작은 서버에서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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