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아름다움

by이해의 등대

폴란드 남서부, 볼레스와비에츠의 지층 아래에는 수천 년간 침묵하며 빛을 기다려온 백색 점토가 있었다. 14세기부터 그 흙을 빚어온 도공들의 손길은 16세기에 이르러 길드라는 이름의 견고한 문명을 이루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납을 걷어낸 무연 유약의 혁신을 통해 인류의 식탁을 더 투명하고 안전하게 덥혔다.

그러나 이 찬란한 도자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화마 속에서 뼈아픈 단절을 겪어야 했다.


가마의 불꽃은 꺼졌고, 그곳을 지키던 도공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도시의 이름조차 국경의 이동에 따라 뒤바뀌는 시련을 통과했다. 폐허가 된 가마터에서 타데우시 샤프란과 같은 예술가들이 깨진 파편을 모아 다시 불을 지핀 것은, 단지 그릇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무너진 민족의 영혼을 이어 붙이는 거룩한 복원이었다.


이러한 폴란드 도자기의 생애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비슷한 역사의 굴곡을 지나온 한국인으로서 형언할 수 없는 유대와 애정을 느끼게 된다. 침략과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흙을 만지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던 그들의 인내는, 전란 속에서도 가마터를 지키며 백자의 순결함을 지켜낸 우리의 선조들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뜨거운 불길을 견디고 다시 태어난 그릇들은, 흉터조차 무늬로 받아들이는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십 년 전, 지독하게 무더웠던 이국의 여름날 내가 만난 것은 단순히 정교한 그릇이 아니라, 소멸의 위기를 건너온 존재들이 내뿜는 고요한 증언이었다.


아내 손에 이끌려 폴란드에서 도자기 공방을 찾은 나는 각양각색의 문양을 두른 그릇들 사이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해면을 깎아 만든 도장으로 하나하나 찍어낸 '공작의 눈' 문양들은, 기계가 복제한 정교함 대신 인간의 불완전한 호흡이 깃든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똑같은 디자인이라 해도 물잔의 곡선이나 접시의 테두리는 미묘하게 비틀려 있었고, 그 불완전한 개성들은 마치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처럼 다가왔다. 아내와 나는 그중 몇 점의 도자기를 품에 안고 돌아와 나의 식탁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처음 그 그릇들을 사용할 때는 낯선 경도 앞에서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국의 도자기에 익숙했던 나에게 폴란드의 석기(Stoneware)는 어딘지 모르게 무르고 부서지기 쉬운 질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청자나 백자는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흙의 성분이 유리질로 완전히 녹아들어 결합하는 '자기(Porcelain)'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하여 깨어진 단면을 마주할 때, 그것은 마치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나 차가운 유리 파편처럼 치밀한 적막을 보여준다. 평생 일상속에서 그릇으로 사용해온 한국의 도자기를 애정하면서도, 폴란드 석기의 다름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부주의로 인해 부딪혀 깨진 그릇의 단면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속살이 여전히 '흙'의 본성을 간직하고 있음에 깊은 숨을 들이켰다. 고온에 녹아 전혀 다른 물질로 재탄생하기보다, 흙으로서의 온기와 거친 입자를 품은 채 단단하게 굳어진 그 정직한 단면. 그것은 자신의 기원을 망각하지 않은 채 부서지는, 어떤 서글픈 정직함이었다.


image.png


어느 날이었다. 부주의한 손길 끝에 십 년을 함께한 물잔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정교한 기계가 멈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파열되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한동안 흩어진 파편들 앞에 멈춰 서서, 마치 쏟아진 시간을 주워 담으려는 사람처럼 멍하니 그 조각들을 응시했다. 그것은 단순한 그릇의 파괴가 아니었다. 십 년 전 그 무더운 폴란드의 햇살 아래서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고르던 설렘과, 이제는 군대로 떠날 채비를 하는 아들이 서툴게 우유를 따라 마시던 어린 날의 자국들이 한꺼번에 바스러진 것이었다.


나는 그 조각들을 차마 쓰레기통에 던져 넣지 못했다. 깨어진 도자기를 다시 붙여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며칠 밤을 매달려 집요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자기의 성분을 분석하고, 깨진 단면을 접합할 수 있는 산업용 에폭시부터 오래된 방식인 '킨츠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료를 뒤졌다. 깨진 파편들을 다시 가마에 넣어 구우면 단면이 녹아 서로 엉겨 붙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상상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도자기 공학의 세계는 냉정했다. 이미 유약이 입혀지고 완성된 기물을 다시 구워내는 것은 오히려 구조적인 균열을 심화시킬 뿐이며, 깨진 조각은 결코 처음의 결합력을 회복할 수 없다는 과학적 결론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미세한 핀셋으로 파편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보며, 투명한 접착제를 묻혀 조심스럽게 이어 붙였다. 흩어진 기억의 퍼즐을 맞추듯, 나는 그릇의 단면을 보듬으며 잃어버린 십 년의 세월을 복원하려 애썼다. 끈적이는 수지가 손가락 끝에 들러붙고, 아무리 정교하게 맞추려 해도 소수점 단위의 어긋남이 발생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흙의 숨구멍이 그대로 드러난 폴란드 도자기의 거친 속살은, 접착제를 빨아들이며 침묵할 뿐이었다. 한때는 완벽한 원형을 이루었을 그릇은, 이제 흉측한 흉터를 덕지덕지 매단 채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나의 치열했던 복원은 실패로 끝이 났다. 접착제는 굳었으나 물을 담으면 이내 미세한 틈새로 눈물처럼 습기가 배어 나왔고, 다시 가열할 수도,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도 없는 장식품조차 되지 못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 실패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한 번 부서진 것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릇이 깨어지는 행위 또한 그릇이 통과해야 할 삶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깨진 단면을 억지로 붙여 잡으려 했던 나의 집착은, 어쩌면 흘러가 버린 시간을 박제하려 했던 헛된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릇들의 성질을 몸으로 익혀 더 이상 깨뜨리는 일은 없으나, 나는 여전히 이들을 갓 태어난 생명을 다루듯 세심하게 매만진다. 그릇의 결마다 십 년 전 그 무더운 날씨 속에서 하나씩 손으로 골라 들고 온 기억들이 촘촘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는 어느덧 늠름하게 자라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다. 그 십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 동안, 이 그릇들은 우리 가족의 끼니를 묵묵히 받아내며 일상의 고단함을 함께 나누어 왔다. 누구의 물잔이 되어 목마름을 축이고, 누구의 접시가 되어 따뜻한 온기를 전해온 시간. 그릇 바닥에 남은 미세한 긁힘과 옅어진 문양은 우리 가족이 통과해온 생의 무늬이자 기록이다.


불완전한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을 혀끝에 올릴 때마다, 나는 완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매끄러움을 떠올린다. 정형화된 디자인도, 결점 없는 강함도 아니지만, 저마다 다른 형태로 빚어져 각자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그릇이 지닌 진정한 가치임을 이제야 안다. 획일화된 기성품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의 지문이 남긴 흔적과 세월이 덧입혀진 무게. 완벽하게 녹아내려 자기를 증명하기보다, 흙의 단면을 보이며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가 된 그 유약함이 오히려 나를 안도하게 한다.


우리 가족의 사소한 역사와 함께 늙어가는 이 투박한 그릇들을 보며, 나는 완벽한 것보다 소중한 것은 '함께 견뎌낸 상처'임을 배운다. 비록 모서리가 조금 이가 빠지고 색이 바랜다 해도, 그 불완전한 흔적들이 모여 우리 집만의 유일한 풍경을 완성해 가고 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떠난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동안 그 불완전함을 충분히 사랑하는 법을 나는 이 먼 나라의 그릇들을 통해 비로소 익히고 있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3화주머니 속 껌 한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