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껌 한 통

by이해의 등대

온종일 진눈깨비가 비릿한 바람에 뒤섞여 흩날리던 하루였다. 이른 새벽, 강릉에 있는 연구소의 사소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평소 먼 길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게으른 성정 탓에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여정도 나에게는 커다란 여행과 동급이었으나, 등 떠밀린 일상은 미룰 수 없는 숙제처럼 나를 몰아세웠다. 열차의 창창한 유리창 너머로 엉망으로 엉킨 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가 꽤나 험난하리라 예감했다.


하지만 생(生)은 언제나 우리의 빈약한 예상을 비웃듯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나는 창밖의 풍경을 온전히 소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지막까지 예매창을 뒤적이다 기어코 얻어낸 10호차 19D 좌석. 일하러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창가 자리를 꿰찼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설렘이 번졌다. 좀처럼 먼 길을 떠나지 않는 나에게 이 쇳덩이의 이동은 분명 일종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어머, 어머, 웬일이니!"


통로 건너편 19A와 19B 좌석에 앉은 일행 중 한 분이 외마디 탄식을 뱉었다. 사연인즉슨,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일행 한 명이 오지 못하게 되어 표를 취소했는데, 그 짧은 틈을 타 누군가(나라는 불청객)가 그 자리를 차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옆자리를 비워두고 짐을 편히 올려두려던 그들의 소박한 기대가 나라는 존재로 인해 무너졌음을 직감했다. 미안한 마음에 먼저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대화의 문을 열었다.


승강기만 타도 멀미를 할 만큼 유약한 체질임에도 친구들과의 여행을 위해 큰 용기를 냈다는 어머님의 일상을 들으며, 나는 가만히 있었으면 결코 닿지 못했을 타인의 생애 속으로 천천히 젖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비수 같은, 그러나 다정한 농담이 날아왔다.


"세상에, 강릉에 일하러 가다니 참 안됐어. 급한 일 아니면 가서 좀 쉬엄쉬엄해요."


19C 어머님은 측은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껌 한 통을 내미셨다. 머릿속으로는 강릉역에 내리자마자 탈 버스 노선과 업무의 순서를 정교하게 계산하고 있던 찰나였다. 건네받은 껌 한 통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효율과 속도에 매몰되어 내 처지를 한 번도 가엽게 여긴 적 없었는데, 타인의 눈에 나는 그저 이 아름다운 계절에 일터로 향하는 가련한 온라인 게임인이었을 뿐이다. 나는 '쉬엄쉬엄하면 사장님한테 혼나요'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여행이라는 해방감에 취한 어머님들은 수십 년 전 수학여행을 떠나온 소녀들처럼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셨다.


강릉에 도착하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험난할 것이라 믿었던 하루는 마치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기라도 하듯 매끄럽게 흘러갔다. 굳게 닫혔던 출입문은 안면이 있던 이의 도움으로 손쉽게 열렸고,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던 시설물 설치도 이웃 사무실 사람들의 가담으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세상이 나에게 '네 생각은 틀렸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예상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일정을 마친 나는 서둘러 상경하여 사무실의 포근한 의자에 앉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기차에서 들었던 어머님의 말이 떠올랐다. 주변도 좀 돌아보며 있으라던 그 다정한 권유 말이다.


나는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초당마을로 향했다. 그곳의 별미인 짬뽕순두부와 찰떡을 떠올리며 정류장에 섰지만,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포기하고 역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곁에 서 있던 누군가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평소라면 벌써 지나갔을 텐데 오늘은 좀 늦네요. 곧 올 거예요."


그 말은 예언처럼 들어맞았고, 나는 무사히 초당마을에 당도했다.


친절을 베풀 기회는 멀리 있지 않았다. 초당마을에서의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정류장 전광판에는 버스 도착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다는 비보가 떠 있었다. 낭패감에 젖어 있을 때 옆자리 일행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다른 정류장이 있다는 정보였다. 눈비 섞인 진눈깨비를 맞으며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걷는 길은 고역이었지만, 그 길 끝에서 오른 버스에서 나는 한 학생을 마주했다.


하반신 장애로 양손에 목발을 짚고 힘겹게 버스 계단을 오르던 학생. 나는 조건반사처럼 일어나 자리를 권하고 그의 짐을 나누어 들었다. 학생의 머리는 삭발에 가깝게 짧았다.


"이런 날씨에 목발을 짚고 다니려면 참 힘들겠어요"


라는 나의 무심한 걱정에 학생은 덤덤하게, 그러나 맑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서 제가 머리를 기르지 못해요. 긴 머리가 비에 젖으면 제가 너무 불쌍해 보이거든요."


그 문장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내리쳤다. 타인의 시선에서 '동정'을 지워내기 위해 스스로 머리카락을 밀어버린 아이. 과거 다리를 다쳐 인도 위를 기어 다녔던 나의 유년이 겹쳐 보였다. 나는 학생의 목적지가 나의 길과 같다는 서툰 거짓말을 하며, 쏟아지는 눈비 속에서 그의 우산이 되어주기로 했다. 살아가며 그 아이가 혼자 맞아야 할 눈비가 수없이 많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곁에서 보폭을 맞춰준 이웃이 있었다는 기억이 작은 난로가 되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일찍 돌아가려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운명의 장난에 졌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학생과 나누었던 짧은 악수의 온기가 한동안 손바닥을 떠나지 않았다. 차가운 진눈깨비가 세상을 적시던 강릉의 어느 오후,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효율보다 멈춤이, 속도보다 동행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본다. 여전히 어둠은 깊고 바람은 차갑다. 하지만 그 아이의 기억 속에 남은 오늘의 비는, 차갑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따뜻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건너온 작은 호의들이 모여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데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위대한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주머니 속의 껌 한 통을 만지작거리며, 비로소 편안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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