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4]에피소드4.어설픈 열정이 아니라

단편소설1.후광이 사라진 뒤 사랑의 민낯

by최지윤

에피소드 4. 어설픈 열정이 아니라, 견딜 수 있는 꿈

나는 그들의 논리를 깨는 데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민중과 함께라며, 그 ‘민중’이 정확히 누군데?”

“우리가 집회만 크게 하면, 정권이 무너져?”

회의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누군가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는 건 조금 짜릿했다.

허공에 떠 있는 문장을 바늘로 톡 찔러 터뜨리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이 틀렸다고 믿는 건 아니었다.

광주에서 자란 사람치고,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나.

최루탄 냄새 밴 저녁 공기와 도망치던 언니·오빠들의 등을 보고 자란 세대에게, ‘정치에 관심 끄고 살라’는 말은 애초에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다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설픈 열망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걸.

어른들의 실패와, 구호만 크던 사람들의 퇴장과, 내 어린 날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영웅 지망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배운 건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잔인하게 따졌다.

이 말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이 계획이 사람을 살릴지, 또 다른 희생만 만들지.

나 자신도 포함해서, 아무에게도 쉽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총학생회실은 언제나 약간의 냄새가 났다.

눅눅한 장판 냄새, 오래된 나무 바카라상에서 나는 먼지 냄새, 식다 만 컵라면의 미지근한 국물 냄새.

그리고 누군가 벽에 붙인 최루탄 피하라는 유인물에서 희미하게 풍겨 나오는 잉크 냄새까지 뒤섞여 있었다.

“다들 조용히 좀 해 봐요. 오늘은 조금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해서요.”

슬롯자가 철제 의자를 끌어다 바카라상 앞에 앉았다.

방 안에는 서너 개의 형광등이 전부였는데, 그중 하나는 깜빡거리다 꺼졌다 다시 켜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뒤쪽 구석, 칠판 옆에 기대어 앉아 노트를 펴놓았다.

원래는 단순히 회의록이나 정리해 달라는 부탁이었지만, 정작 회의가 시작되면 필기할 틈이 잘 나지 않았다.

듣고 있다 보면, 자꾸만 따지고 싶은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에 학교 앞 사거리에서 시위를 크게 한 번 붙입시다. 학내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도심 쪽으로 나가야 언론도 타고, 학생들 사기도 올라가죠.”

한 선배가 바카라상 위에 펼쳐놓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종이에는 직선으로 그어진 화살표와 동그라미, 그리고 ‘집결’, ‘행진’, ‘점거’ 같은 단어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마치 보드게임 판 같았다.

“사거리 점거?”

누군가가 되묻자,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리 학교에서 출발해서, 초입 사거리 한 차선 정도를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면서 최소 1시간은 버텨봅시다. 경찰 기동대가 오기 전까지 최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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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기 전 철학을 전공했고, 강의와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해석해 왔습니다. 뇌출혈 이후 재활의 시간을 지나며 몸과 마음을 다시 배우며 더 깊어진 시선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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