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 있다.>
서울.
빌어먹을 다 서울 때문이다.
아이를 왜 꼭 서울에서 키워야 하는지 부부가 대하는 양육의 세계는 완전히 달랐다.
아이는 서울에서 키워야 된다는 남편과
어릴 때는 살기만 좋으면 아무 데도 괜찮다는 여자가 맞붙었다.
그러다 그녀는 어느 순간 교육을 모르는 한심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반포기 상태로 서울에 가는 것에 동의했다.
언제나 그녀는 반포기상태로 지쳐서 동의했다.
후일 그것을 굳이 '왜'로 따진다면 남는 것은 하나였다.
'너도 그러자고 했잖아'
기억은 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남편은 말했다.
미친 듯이 저항하지 않으면 과정은 잊힌 채, 결국 '동의'만 남는다는 것을 연숙은 알고 있었다.
단지, 큰 소리를 내기 싫었다. 그래서 매번 소란이 적은 쪽을 택했다.
기대는 항상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방 안에서 듣고 있을 아이가 신경 쓰여, 그저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서울은 달랐다.
바빠진 회사는, 프리랜서였던 그녀의 손을 더 많이 요구했다.
주위에선 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엄마도 온라인 게임에 다니고 자신의 일을 찾아야 한다고.
주변의 몇 안 되는 친인척, 혹은 그다지 가깝지 않은 타인들은 그랬다.
대부분 남편 쪽인 그들은 그녀가 자신의 이력을 버린 채 남편만 일하는 상황을 못마땅해했다.
그들의 속내는 아마 자신들의 삶에 비쳐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냈다.
그녀는 쉬고 싶었다.
아이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지방에 사는 동안 남편의 부채를 해결하려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법원과 변호사사무실을 들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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