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우주 - 인터미션

by박경민


욕망과 우주



인터미션


​우주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찾고자 생명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혹독한 물리 세계에서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욕망'이라는 생존의 도구를 쥐여주었다. 그런데 그 도구를 지휘하는 생명체의 자아가 생존이라는 목적을 너무나 완벽하게 수행한 나머지, 인간은 오직 욕망만을 좇으며 인식을 고도화시키고 지능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다. 정작 생명을 탄생시킨 태초의 이유는 그 과정에서 점점 잊혀 버린 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욕망'이, 생명이 탄생한 '이유'를 덮어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지독한 이율배반인가. 살아남기 위해 욕망해야만 했는데, 욕망하다 보니 자신이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셈이다. 살기 위해 숨을 쉬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숨을 쉬기 위해 사는 꼴이 되어버린 것과 같다.

우주의 눈으로 보자면, 생명이라는 거울은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그 표면에 욕망이라는 때가 너무 두껍게 껴서 더 이상 우주의 얼굴을 비추지 못하게 된 기막힌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깨닫고 나니, 내가 처음에 품었던 의문 — '왜 소설 속 주인공들은 기어이 무언가를 욕망해야만 하는가, 왜 욕망 없는 인간은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는가' — 에 대한 해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학이, 그리고 이야기가 욕망하는 인간에게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욕망을 통해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욕망 속에 숨어 있는 모순.

우리는 본능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품고 있는 거대한 우주적 모순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살기 위해 욕망하지만 그 욕망 때문에 본질을 잃어버리는 딜레마.

껍데기에만 매달리며 무의식을 외면하는 삶에 찾아오는 더 큰 갈증. 반대로 욕망을 버리고 본질에만 집중하는 삶에 찾아오는 공허함이라는 비극.

인간은 생존과 본질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도록 운명 지어진, 태생부터가 모순적이고 극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욕망을 통해 물리 세계에서의 맹목적인 생존을 이어가면서도, 무의식 한구석에서는 잊어버린 근원적 질문("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지독한 갈증과 공허함을 안고 살아간다. 생존을 위해 욕망을 따르면서도, 완전히 욕망에만 잠식당할 때는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는 이 기이한 병. 그것이 바로 생명을 가진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 않을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제야 '욕망'이라는 하나의 단어 안에 얼마나 여러 층위의 의미가 숨어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기이한 욕망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리고 인간은 그 욕망을 어떻게 대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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