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우주
1부. 욕망을 파헤치다 마주한 거대한 질문
제8장. 다시, 욕망
이제 글을 마치려는데, 한 가지 의심이 피어올랐다.
나는 줄곧 생존을 위한 욕망과 태초의 물음을 갈라 세웠다. 욕망은 살아남으려는 힘이고, 물음은 그보다 깊은 곳에서 우리를 부르는 무의식의 목소리라고. 욕망은 바깥으로 미끄러지고, 물음은 안으로 돌아선다고. 그렇게 둘을 나누어야 이야기가 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 그 경계가 다시 흐려졌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그 마음은 무엇인가. 알고자 하는 갈망, 견딜 수 없이 마주하고 싶어 하는 그 충동 — 그것 역시 욕망이 아닌가. 무언가를 향해 기울어지는 마음, 그것을 우리는 욕망이라 불러왔으니까.
그러고 보면 태초의 존재도 그러했다.
완전하여 부족함이 없었으면서도, 자신을 알고 싶다는 단 하나의 욕망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깨뜨렸다. 우주를 둘로 가른 그 균열은, 결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욕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알고자 하는 욕망. 모든 것이 시작된 가장 처음의 욕망.
그렇다면 우리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의 가장 깊은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 더 가지려는 욕망 아래에, 살아남으려는 욕망 아래에, 그 모든 껍질을 벗기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단 하나의 욕망 — 나는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는 그 우주적 욕망으로.
문득 오래전 읽었던 한 구도자에 대한 글이 떠오른다. 그는 욕망을 억누르지 않았다. 쾌락도 고행도 끝까지 밀고 나아가, 모든 욕망을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재가 되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비로소 강물 앞에 고요히 앉을 수 있었다. 그가 닿은 것은 욕망의 부재가 아니었다. 욕망을 끝까지 따라간 끝에 만난, 욕망의 가장 밑바닥이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욕망은 생명의 본질인가.
그렇다. 욕망은 생명의 본질이 맞다. 다만 우리가 참으라 배운 그 가짜 욕망이나 생존을 위한 필연적 욕망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된 욕망이다. 나의 글에서 욕망 없는 인물이 그토록 공허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비추지 않았고, 스스로의 존재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묻기를 멈춘 존재는 처음의 목적을 잊은 채, 우주가 스스로를 비춰보는 것을 멈춘 거울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계속 멀어져 왔다.
생존의 목소리를 내는 가짜 욕망의 소음 속에서, 가장 오래된 물음을 자꾸 잊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잊었을 뿐 잃은 것은 아니다. 어느 고요한 밤 모든 것이 평온한 순간에 이유 없이 가슴이 아릴 때, 하늘을 황홀한 색으로 물들이며 저물어 가는 노을에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를 때, 그것은 무의식이, 우주의 반쪽이 아직 우리 안에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를 향해, 우리를 통해 묻고 있다는 증거.
나는, 그리고 너는 누구인가.
그러니 이 글은 경고가 아닌 초대이다. 잠시 멈추어, 그 오래된 욕망, 그 태초의 질문 곁에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적혀 있는 초대장.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 답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 다만 우주가 우리를 통해 계속 물을 수 있도록 말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본래 그 물음의 다른 이름이었으므로.
이 생각을 하는 동안 가슴이 뛰었다.
이 글을 적을 때는 머리가 아팠다.
가슴이 뛰고 머리가 아픈 시간이 무의식이 나를 이끈 순간이었을까 하는 물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