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생존을 거스르는 자들, 무의식의 흔적

by박경민


욕망과 우주

1부. 욕망을 파헤치다 마주한 거대한 질문




제​6장. 생존을 거스르는 자들, 무의식의 흔적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 이것이 태초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주는 생명을 만들었다. 그런데 생명체인 인간은 왜 그 질문의 답을 찾지 않는 것만 같을까? 그리고 물리의 형상과 무의식을 함께 담은 것이 생명인데, 생명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무의식을 어디다 잃어버리고는 의식(자아)으로만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 인간이 물리의 영역인 몸과 욕망을 지휘하는 자아로만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


나는 욕망과 관련된 사유들의 근거를 확인하던 중 하나의 뇌과학 실험 결과에 흥미를 느꼈다. 1980년대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이 진행한 자유의지에 관한 실험이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원할 때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의 뇌파를 측정했다. 결과는 인간의 오랜 믿음에 균열을 냈다. 실험 참가자가 '손가락을 움직여야겠다'라고 의식적으로 마음먹기 약 0.3~0.5초 전에, 이미 뇌의 운동 피질에서는 무의식적인 준비 전위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의식으로 몸을 통제한다고 믿어왔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심연에서 무엇인가가 먼저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보다 먼저 몸을 움직인 그것은 무엇일까?

이 리벳의 실험에서 하나의 가설을 주장해 보려 한다. 우리가 '움직이자'라고 의식적으로 결정하기도 전에, 몸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이 전기 신호의 형태일지라도, 의식의 결정이 먼저가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므로, 나는 그것이 생명의 탄생에서 이야기했던 또 하나의 반쪽 — 육체에 깃든 무의식이 아닐까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무의식은 단순히 손가락을 까딱이는 일상적인 순간에만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인간이 자아와 욕망으로만 이루어진 완벽한 '생존 기계'라면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극적인 순간들 속에서, 이 무의식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맹렬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 당장의 빵 대신 자유와 신념을 외치며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 자신의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육신의 소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

​자아(에고)의 철저한 생존 계산기로 두드려보면 이것은 완벽한 오류다. 유능한 생존의 도구가 생존 자체를 포기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계산되지 않은, 혹은 계산을 초월한 비합리적인 선택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과학을 통해 인간의 지식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려 보자. 인류는 생존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던 그 혹독한 원시의 환경 속에서도, 당장의 허기를 달래줄 사냥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신에게 바칠 제단을 쌓았고, 죽은 자의 무덤에 꽃을 뿌리며 현세 너머의 다음 삶을 기원했다. 영혼, 사후세계, 윤회, 깨달음. 시대와 대륙을 막론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물리적 세계 너머의 무언가'를 굳게 믿고 좇았다.

​철저한 생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식량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거대한 낭비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결코 과거 인류의 무지나 미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척박한 생존의 현실 속에서도 조용히 생명 안에 존재하던 무의식의 투영이었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이 물리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주가 두 개로 쪼개질 때 탄생했던 나머지 반쪽, 즉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고스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다만 생존의 굉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뿐, 인간이 한계를 마주하거나 눈을 감고 내면을 향할 때마다 그것은 늘 우리를 물리적인 세계 너머로 이끌어왔다.


나는 여기까지 쓰고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의 격언.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 있었으며,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라 알려졌던 말.

나는 이 문장을 도덕 교과서 첫머리에서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선생님은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 그것은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할 한 줄의 지식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글을 여기까지 써 내려온 지금, 그 문장이 다시 떠오른 이유는 그것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태초의 물음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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