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무의식, 그리고 태초의 질문

by박경민


욕망과 우주

1부. 욕망을 파헤치다 마주한 거대한 질문




제7장. 무의식, 그리고 태초의 질문


그러니 무의식은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묻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묻힌 그것은, 우리가 잠시 멈출 때마다 어김없이 같은 곳으로 우리를 돌려세운다.

가진 것이 적지 않은데도 문득 차오르는 까닭 모를 공허, 모든 것이 갖춰진 어느 밤에 찾아오는 설명할 수 없는 허기. 그것은 결핍의 신호가 아니라, 묻힌 물음이 보내는 신호다. 나는 누구인가. 우주가 자신을 알기 위해 우리 안에 심어둔 그 물음이,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물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래된 가르침들은 욕망을 버리라 말해왔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욕망은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힘이고, 그것을 통째로 버린 자리에 남는 것은 평온이 아니라 죽음일 테니까. 욕망 없는 인간이 그저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졌던, 이 글을 시작하게 한 그 처음의 의문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이제 나는 그 의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욕망이 아니라, 욕망에 덧씌워진 껍질이라고.

앞서 보았듯 욕망에는 두 겹이 있었다. 하나는 생명을 지탱하는 진짜 생존의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위에 덧씌워진 가짜 생존의 껍질 — 비교하고, 앞지르고, 끝없이 더 가지려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다. 우리가 매일의 기력을 태우는 곳은 대개 이 껍질이다. 그러니 버려야 할 것은 살아가려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살아남은 척하려는 그 껍질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그 껍질을 벗긴 자리를, 서둘러 다른 것으로 채우지 말 것. 비워둘 것.

우리는 빈자리를 견디지 못해 늘 무언가로 메우려 한다. 새로운 목표, 새로운 소유, 새로운 가짜 생존의 과제로. 그러나 그 자리는 본래 비어 있어야 하는 자리다. 가짜 생존이 안쪽의 목소리를 끝없이 덮어왔으므로, 그것을 걷어낸 빈자리에서야 비로소 묻혀 있던 무의식이 천천히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움은 잃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것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욕망을 다스리라'라는 그 오랜 가르침의 참뜻도 여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욕망을 죽이라는 말이 아니라, 바깥으로 끝없이 미끄러지는 그 껍질에 휘둘리지 말고 안으로 돌아서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참으라 배운 그것과,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그것은 애초에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다만 둘을 같은 이름으로 불러왔을 뿐이다.

내가 처음 바카라장에서 만났던 한 사람이 떠오른다. 안정된 삶과 가정을 모두 버리고 오직 그림을 그리겠다는 열망 하나로 떠나버린 『달과 6펜스』의 사내. 생존의 계산으로 보면 그는 어리석은 자다. 가진 것을 스스로 내던졌으니까. 그러나 그는 가짜 생존의 껍질을 벗고,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어떤 부름을 따라간 것이다. 그 부름이 그를 어디로 데려갔든, 그는 적어도 살아남은 척하기를 멈추고 자신이 무엇인지를 직접 살아내려 했다.

그것이 태초의 우주가 우리에게 바라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짜 생존을 비운 그 자리에서, 우리 삶을 통해 다시 한번 태초의 물음에 답해보라는 것.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일은, 곧 우주가 가졌던 그 물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안의 무의식이 태초의 우주가 갈라지며 만들어진 그 반쪽이라면, 내가 나를 향해 던지는 그 물음은 우주가 자신을 향해 던지는 물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는 자신을 알기 위해 생명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짜 욕망의 껍질을 벗고 그 물음 앞에 다시 설 때, 그것은 한 사람의 작은 사색이 아니라, 우주가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자신과의 만남을 인간이라는 생명을 통해 다시 시도하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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