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자아의 탄생

by박경민


욕망과 우주

1부. 욕망을 파헤치다 마주한 거대한 질문



제4장. 자아의 탄생


생명은 욕망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품고 생존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고 위협이 도사리는 물리의 세계에서, 단순히 맹목적으로 욕망하는 것만으로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불길을 원한다고 뛰어들 수는 없고, 배가 고프다고 아무것이나 취할 수는 없었다.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욕망들을 물리 세계의 법칙에 맞게 조율하고,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가장 확실하게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즉, 이 맹목적인 욕망들을 통제하고 지휘할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해진 것이다.

​생명은 진화를 거듭하며 욕망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사령탑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위험을 기억하여 피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며, 당장의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여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욕망을 분출하도록 이끄는 조종석. 그것이 바로 ‘의식’의 탄생이다.

​의식이 고도화되면서 생명체에게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생존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전체 우주에서 오직 '자신'만을 분리하여 인식하는 고립된 중심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곧 ‘자아(에고, Ego)’다.

그렇다면 이 자아의 탄생은 생명에게 축복인가, 비극인가? 나는 선뜻 답을 내릴 수 없어, 까마득한 옛날 나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던 구도자들의 시선을 빌려보기로 했다.


고대 인도의 베단타 철학은 인간 내면에 형성된 이 물리적 자아를 '아함카라(Ahamkara)', 즉 '나를 만드는 자(I-maker)'라고 불렀다. 아함카라는 거대한 우주(무의식)와 하나였던 존재가 물리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환영의 껍질로, 철저히 '나'와 '나머지 세계'를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我相)' 역시 궤를 같이한다. 진정한 나(무의식)를 망각한 채, 오직 오감으로 느끼고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이 육신과 생각만이 '나'라고 굳게 믿는 껍질. 구도자들은 이 자아가 진짜 본질이 아니라, 현상계(물리 세계)와 부딪히고 연산하며 생존하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진 '기능'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구도자들은 이 분리를 비극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가야 할 고향을 잊은 환영의 껍질이라고. 그러나 나는 그것을 온전한 비극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떠올려보라. 태초의 우주 또한 자신을 알기 위해 스스로를 둘로 쪼개지 않았던가. 마주 볼 타자가 없이는 누구도 자신을 알 수 없으므로.

자아가 '나'라는 인식으로 스스로를 떼어낸 그 분리는, 어쩌면 그 까마득한 깨어짐을 생명체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다시 한번 되풀이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주가 자신을 보기 위해 갈라졌듯, 생명도 자신을 보기 위해 '나'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자아의 탄생은 비극이자 동시에, 우주가 자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했던 그 한 걸음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이로써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구조는 묘한 층위를 이루게 되었다. 가장 깊은 곳에는 태초의 우주가 품었던 근원적 물음(“나는 누구인가?”)을 간직한 무의식이 자리하고, 그 위로는 생존을 향해 들끓는 동력인 욕망이 요동치며, 가장 바깥에서는 아함카라, 즉 의식을 가진 자아가 물리적 세계의 운전대를 쥐고 철저한 계산 속에 삶을 이끌어가는 형태.

​우주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만든 생명체는, 그렇게 의식을 가진 자아의 껍질을 두르고 거친 물리의 세계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자아는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너무도 훌륭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그 뛰어난 생존 능력은,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애초에 품고 태어났던 태초의 목적을 점점 덮어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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