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해나와 별이는 어느새 4학년과 2학년이 되었다. 아이들은 분주한 학교생활에 차츰 적응해 갔고, 은정 역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 갔다.
그렇게 계절이 한 번 더 바뀌어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은정의 손길은 분주했다. 전날 챙겨 둔 물건들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미리 준비해 놓은 재료로 김밥을 말았다. 도시락과 간단한 간식을 차곡차곡 담고 있으려니, 며칠 전부터 수영장에 가자고 재촉하던 별이의 들뜬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려 온 날이었다. 은정은 혹시 빠뜨린 것이 없는지 가방 안을 다시 살폈다. 수건과 여벌 옷, 물병, 간식까지 빈틈없이 들어 있었다.
‘너무 많이 챙겼나?’
묵직해진 가방을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하던 그때, 집 밖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은정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정은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차 앞에서 기다리던 한길과 아이들이 그녀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활기찬 인사에 은정도 미소로 답했다. 어느덧 조금은 자연스러워진 몸짓으로 조수석에 오른 은정은 뒷좌석을 돌아보며 선크림을 건넸다.
“출발하기 전에 몸이랑 얼굴에 꼼꼼히 발라. 오늘 햇볕이 아주 강하대.”
별이는 선크림을 받아 들자마자 창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우리 이제 진짜 수영장 가는 거죠?”
은정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전띠가 채워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한길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며 시동을 걸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들의 여름날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경기도 외곽에 자리한 유원지에는 야외 수영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유원지 안의 식당을 이용하면 바로 옆 계곡에서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더운 여름날, 물놀이만큼 시원한 일이 또 있을까.
아이들은 차 안에서부터 튜브에 열심히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 옷자락을 살짝 들춰 은정에게 수영복을 보여 주었다.
“히히, 우리 옷 안에 수영복 미리 입었어요. 도착하면 옷만 벗고 바로 수영장에 들어갈 거예요.”
별이의 자랑스러운 말에 은정은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수영장에 도착하자 은정과 한길은 차에서 짐을 꺼내 풀장에서 멀지 않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한길이 돗자리를 펴고 짐을 정리하는 동안, 은정은 별이가 겉옷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옆에 있던 해나는 혼자 할 수 있다며 슬쩍 몸을 돌린 채 옷을 벗고 물놀이할 준비를 마쳤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 운동부터 해야 해.”
한길의 말에 별이와 해나는 팔과 다리를 몇 번 건성으로 흔들었다. 마음은 이미 물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아이들은 차 안에서부터 바람을 넣어 둔 튜브를 한쪽 팔에 끼고 얕은 풀장을 향해 달려갔다.
“뛰지 말고 천천히 가!”
은정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잠시 걸음을 늦추는가 싶더니, 이내 종종걸음으로 풀장 앞까지 다가갔다.
풀장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발끝부터 물에 담갔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타고 오르자 동시에 어깨를 움츠렸다. 잠시 뒤에는 종아리를, 그다음에는 무릎까지 천천히 물속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한 아이들은 대단한 용기라도 낸 듯 비장한 표정으로 풀장 안에 몸을 담갔다. 튜브에 몸을 맡긴 별이와 해나는 수영 선수라도 된 것처럼 힘차게 팔을 휘젓고 발을 찼다. 한참이나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의기양양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출발한 자리에서 고작 오십 센티미터쯤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정과 한길은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물놀이를 하고 나면 금세 배가 고파진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은정 씨도 들어가서 좀 놀아요. 물이 시원해 보이는데.”
한길이 넌지시 권했지만, 은정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사양했다.
“저는 아이들이 노는 것만 봐도 제가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물을 조금 무서워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발 정도는 담글 수 있잖아요.”
“그건……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은정의 대답에 한길은 옅게 웃으며 준비해 온 음료를 꺼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실컷 물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이 마침내 배고픔을 느꼈는지 은정과 한길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얼마나 오래 물속에 있었던 것인지, 아이들의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세상에, 추우면 진작 나오지 그랬어.”
은정은 서둘러 아이들의 어깨에 수건을 둘러 주었다. 젖은 머리카락과 얼굴의 물기를 닦아 준 뒤에야 집에서 준비해 온 김밥과 간식거리를 꺼내 아이들 앞에 펼쳐 놓았다.
“우와, 김밥이다!”
별이는 김밥 한 알을 냉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볼이 금세 빵빵하게 부풀었다.
“맛있다. 그렇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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